기술문명이 발달하고, 나라 구석구석에 댐이 설치됐어도 게릴라성 집중 폭우에 온 나라가정신을 잃고 헤매는데 하늘의 보살핌에만 의존하던 60~70년전에는 어땠을까.
최근 수마가 덮친 경북 안동 일직으로 자원봉사를 나갔던 여성들은 "마을입구에 도착하니산더미같은 쓰레기와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르고 고추밭에 덕지덕지 눌러붙은 수마의 흔적은아무리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았다"고 했는데 빼앗긴 나라의 국민들은 어떻게 수마를 이겨냈을까.
예전에도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온 국민이 마음모아 수재를 극복했을 터이지만 대구기생들이수재복구를 위해 가곡대회를 열고, 자선국악대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가슴에 와닿는다. 일제통치가 시작되자 나라를 일으키기위해서는 학문을 일으켜야 하느냐, 병사를 길러야하느냐는'흥학(興學), 양병(養兵)'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대구기생조합의 민족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30년대 조선일보는 예능에 뛰어났던 명기·명창들이 수재의연금을 모으기위해 대규모 공연을 펼쳤다고 적고 있다.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등 삼남(三南)지역에 미증유의 수해사실이 알려지자 각처에서 구제금이 밀려들었는데 그중 함흥 반룡권번의 예기(藝妓) 40여명이 재민의 참상을 듣고 구제연주회를 개최, 대성황을 이루었다. 쏟아지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기생들이 붉은 정성을 다한이 구제연주회에서는 수익금 1백1원97전에 의연금 87원50전 등 합계 1백89원이 걷혀졌다.청진권번·안악권번·목포권번이 잇따라 수재기금 마련을 위한 연주회를 선보였고, 1934년9월에는 국창 김초향의 수재민돕기 가곡대회가 대구공회당에서 개최됐다.
1934년 9월5일자 조선일보의 한토막.
'삼남지방을 위협적으로 몰아친 수해도 어언간 꿈결같이 세상사람들 기억속으로 사라지려하나 가을 바람을 맞이하면서 이재동포의 참상은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에 온 민족이 이재동포를 돕기 위해 나라안에서, 혹은 나라밖에서 성의를 다하고 있는 때에 또 한가지기쁜 소식이 들린다. 본사 대구지국주최로 삼남 수재동포구제를 위한 명창 김초향(金楚香)씨의 독연회(獨演會)가 불원간 대구 공회당에서 열린다'.
여류가곡의 제일인자로 이화중선(李花中仙)과 함께 여류명창의 쌍벽을 이뤘던 김초향(1900~?)은 대구에서 농사꾼의 맏딸로 태어나 13세에 모친은 병사하고, 14세에 집이 가난하여 서울의 일류요리집 사장의 수양딸로 들어갔다. 광무대 극장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던 김초향은 이후 국창 김창환(金昌煥) 송만갑(宋萬甲) 정정열(丁貞烈)의 지침을 받아 20세에 여류명창으로 명성을 떨쳤다.
수재민돕기 김초향 독연회는 만년에 조선성악연구회를 설립, 판소리 부흥에 공헌이 드높았던 명창 송만갑씨(1865~1939)의 찬조출연으로 더욱 빛이 났다. 이날 독연회는 수마에 할퀸민심을 위무하기 위하여 입장료가 단돈 30전으로 누구든지 관람할 수 있도록 아주 싸게 책정됐다.
이날 공연 수익금이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기록돼있지는 않으나, 이보다 이틀전에 목포 예기권번이 삼남 수재구제연주회를 개최하여 1백원을, 안악 예기조합이 역시 수재민연주회를 개최하여 2백13원을 벌었던 것으로 미루어 비슷한 규모였으리라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생·명창들의 수해구제 연주회가 늘상 평화롭게 열렸던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일제의 탄압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36년 8월30일자 조선일보에는 '미증유의 수재로 천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수만의 동포가 수마에 입을것, 먹을 것을 다 빼앗겨 헐벗은 채로 굶주린 배를 움켜안고 길거리에서 방황하고있다. 그 참상을 백분지 일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경심관에서 수해구제연주회(9월3일)를 개최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다해놓았는데 경찰서에서 허가하지 않아 부득이 중지하였다'고 적고있다.
기생들의 모금공연은 수재의연금 뿐만 아니라 만주조난동포돕기·무산아동(영세민자녀) 야학경비마련, 조선악계 진흥 등의 명목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여류창악계의 패장이 됐던 김초향은 어느날 고향 대구에 왔다가 전란으로 떠돌아다니는 재만동포들의 딱한 소식을 전해듣고, 31년 12월2일 대구극장에서 독창회를 열었다."기온은 나날이 떨어지는데, 밥그릇·옷한벌도 없어 헤매는 만주동포들을 위해 대구극장에서 재만 수난동포 김초향 구호독창회가 열렸는데 이봉희(李鳳姬)·현계란(玄桂蘭)·최송희(崔宋姬)양도 조연으로 함께 무대에 섰다. 극장을 꽉채운 관중의 열렬한 환영속에 구호독창회는 무사히 끝났고, 전 수입금이 재만동포들에게 보내졌다.
금오공대 김석배교수(판소리전공)는 "기생중에는 논개의 후예라고 할만큼 민족정신을 가진부류들도 있었다"며 일부에서는 수재의연금 뿐만 아니라 국채보상운동, 군자금까지 내기도했다고 밝혔다.
성광고등 손태룡교사(음악)는 "김초향은 왕족들과 교분이 깊었다"며 정계와의 폭넓은 교분을 밑천으로 구난이 필요한 사람들앞에 스스로 다가서는 민족관을 지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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