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힘들어서일까, 아니면, 일종의 세기말 현상일까. 최근 들어서 부쩍 환상물들이 많이생산되고 있다. '퇴마록'의 성공, TV화면을 수놓는 무수한 환상물들의 범람, MBC의 '이야기 세상 속으로'는 초기의 보통사람들의 재미있고 특별한 경험담에서 점점더 괴기담이나 황당한 귀신이야기 쪽으로 옮아 가고 있고, SBS의 '이것이 알고 싶다'도 '과학적 조명'이라는 핑계 하에 점점더 점복술이나 무당 이야기 등 비현실적인 신비주의적 주제들을선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달콤하고 편안한 명상 서적, 삶의 문제를 가벼운 초월의 붓으로 애매하게 덧칠해 버리는 팬시한 상업주의식 영성주의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그 부정적인 요소들을 걷어내고 보면, 사실 대중이 무엇을 요청하는가를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일단 의미를 가진다. 20세기 내내 진행된 물질적 개발은, 인간의 물질적실존을 상당히 안심시켰지만, 그 대신 인간의 정신을 황폐화시켰다. 냉전 시대에는 이데올로기적인 협박으로 내면적.영지 갈망을 누른 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이제 이데올로기도 맥없이 허물어져 내린 지금, 인간은 존재론적 정체성 갈망을 채워줄 수 있는 어떤 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사회를 이끌어 가는 엘리트 계층은 여전히 물질적 발달과 정치 게임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신음하고있다.
우리 나라처럼 근대화가 외부 세력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진행된 나라에서, 대중의 존재론적소외감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회전체가 겉모양으로는 세련된 탈근대 사회로진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대중의 마음 깊은 곳에는 채워지지 않은 전근대적 욕구가 너무나 칙칙한 형태로 숨어 있다 오대양 사건은 언제라도 다시 재발할 수 있다. 게다가, 타락한 정치 엘리트들, 삶의 문제를 설명하는 데는 아무 관심도없이 남의 나라것만 좇아다니며지적 헤게모니 쟁탈에만 관심이 있는 지식 엘리트들은 대중의 영적 욕구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정치는 정치대로 엉망이고, 문화는 문화대로 뭐가 뭔지 알수 없는 형태로뒤범벅이 되어 돌아간다. 좌절한 대중은, 무언가 의미로 가득찬 것, 너절한 삶을 일시에 끝내줄 신성한 체험을 찾아 헤맨다.
따라서 대중이 신비주의에 관심을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존재 연습'에 있는 것이다. 대중은 물질문명에 의해 사라진, 정신적 가치를 다시 찾고 싶어한다. 대중은 존재를 이해하고싶어한다. 영성을 상업주의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 무엇보다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사이비 영성주의가 대중으로 하여금 진정한 의미의 자기 발견에이르게 하기보다는 일단 고통스러운 삶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정신의 마약과도 같다. 대중은 이러한 일회용 진정제 같은 영성주의 상품을 먹고, 정말로해결해야 할 현실적 문제들로부터 도피한다.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데 '정신'과 '영혼'을 핑계로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 것이다. 대중의 정신은 점점더 유악해진다.21세기에 영성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퇴마록'류의 황당무게한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지평에 접합되는, 삶의 실제적인 질을 상승시키는 인간적 영성의 문제가 될 것이다. 영성주의는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귀신'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우주와 신성함과의 관계 안에서 재정립되는 겸손하고 지성적인 새로운 존재론의 바탕이다. 천박한 영성주의를 징계해야 한다. 그것은 신비주의를 악마와의 계약으로 변질시킨다. 우리는 신의 아이들이지, 악마의 아이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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