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들 한다. 자식 중 몇째는 더 사랑하고 몇째는 덜 사랑한다는 혐의를 받을 때 부모들이 잘 쓰는 말이다. 이 말은 모든 편애의 혐의를 논파하는 논거로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맞는 말은 아니다.
어느 손가락을 깨물든 아프기는 다 아프겠지만 그 아픈 정도는 다를 수도 있다. 손가락 중에 유달리 외부 자극에 예민한 손가락이 따로 있단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질감에 가장 민감한 손가락은 검지, 즉 집게손가락, 온도에 가장 예민한 손가락은 약손가락이라고 한다.그래서 우리는 피부가 거칠어진 정도를 확인할 때는 집게손가락으로 쓰다듬어 보고, 탕약의 온도를 측정할 때는 약손가락을 넣어본다. 약손가락은 그럴 때 요긴해서 '약손가락(약지)'이라는 이름을 얻었겠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 돌아서면서, '저 부르셨어요'하고 확인 할 때 우리는 손바닥을 우리 가슴에다 대고 '나 말이오'하고 묻는다.
약간 '터프'한 데가 있는 사람은 엄지로 가슴을 찌르듯이 하면서 되묻는다. 일본인은 집게손가락으로 제 코를 찌르듯이 하면서 되묻는다. 중국인에게도 비슷한 버릇이 있다. 손가락 짓은 민족에따라 이렇게 서로 다르다. 그러나 다만 다를 뿐이다.
우리가 숫자를 세면서 손가락을 꼽을 때 어떻게 하는가? 한 손을 내밀고는 엄지부터 집게손가락,가운뎃손가락 순으로 꼽는다. 한손이면 된다. 반대쪽 손의 도움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유럽인들은 새끼손가락부터 약손가락, 가운뎃손가락 순으로 꼽는다.
말하자면 우리와 반대로 꼽는 것이다. 한 손을 펴고 새끼손가락을 꼽아보라. 새끼손가락은 그냥은잘 꼽히지 않는다. 다른 손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양사람들은 이 새끼손가락을 꼽는 일에 반대편의 손을 동원한다. 매우 불편할 텐데도이런다. 미국살이 10년을 넘기면 한국인도 곧잘 그 사람들 흉내를 낸다. 실제 현지인의 짓과 시늉에 동화되어 그러는 경우도 있고 멋을 내느라고 그러는 경우도 있다. 멋을 내느라고 그러는 경우는 별로 예뻐보이지 않는다. 손가락 짓은 민족에 따라 이렇게 서로 다르다. 그러나 다만 다를 뿐이다.
우리는 사물을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사람을 가리킬 때도 집게손가락을 쓰고, 서류의 특정 대목을 가리킬 때도 집게손가락을 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집게손가락 대신 가운데손가락을 쓰는사람이 늘어가는 현상을 목격하고는 기절초풍한 적이 있다. 나 자신도 미국에서 가운데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켰다가 아들 딸로부터 따끔하게 주의를 받은 적이 있다. 내력을 알고보니, 그럴 일이 아니었다.
미국인들에게 가운데손가락은 남성성기의 상징이다 미국인들은 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나 현상을 목도하면 혀를 내미는 것과 동시에 가운데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버릇이 있다. 우리의 쑥덕 먹이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가운데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킨다는 것은 가리킬 때마다 상대에게 쑥떡을 먹이는 것이된다. 따라서, 적어도 미국사회에서만은 함부로 가운데손가락으로 무얼 가리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 나라에서는 괜찮다. 손가락짓은 민족에 따라 이렇게 서로 다른데, 다만 다를 뿐이다. 틀리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여러 차례 지적해 왔거니와 우리는 '다름'과 '틀림'을 혼용하는 기이한 시대를 살고 있다.그 사람의 종교는 나와 틀려요… 다르지 틀리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과 나는 가는 방향이 틀려요… 다를 뿐, 틀리는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같다'의 반대말, '틀리다'는 '옳다'의 반대말이다.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뜻인가? 나와 '같지 않은 녀석'은 '틀려 먹은 녀석'이라는 것인가? 오늘부터라도 바로 쓰면 큰 병 하나 고치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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