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프라하'는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한다. 체코인들의 가슴속을 잔잔히 흐르는 블타바(몰다우)강과 프라하성, 유서깊은 칼루프(찰스) 다리…. 낙엽이 지고 흰눈 내린 프라하는 봄과는 또 다른 정취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성(聖) 비투스 성당의 첨탑은 당당하고, 이마를 맞댄 붉은 지붕들은 아늑하게 느껴질만큼 정겹다. 고도(古都)의 정취를 맛보려면 프라하로 가라는 권유가 허튼소리는 아닌 듯 싶다. 한해 프라하를 찾는 관광객 수가 1억명을 넘는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개방 10년. 체코의 봄을 보려면 아름다운 자연에서보다 체코인들의 얼굴에 도는 생기에서 찾는게 더 빠르다. 68년 '프라하의 봄'의 진원지인 바츨라프광장에는 이제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지 않다. 고풍스런 국립박물관을 배경으로 갖가지 꽃과 잔디로 뒤덮인 광장에는 이제 더이상 점령군의 무자비한 탱크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신 거리를 가득 메운 서유럽산 자동차들의 소음만이 정적을 깨뜨릴 뿐이다. 벤치에 앉아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광장 주변의 번화한 상점들에선 활기가 넘친다. 한참 연하의 여인과 재혼, 구설수에 올라 있는 하벨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대통령궁은 관광명소로 변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가 있는 좁은 '황금 골목'과 천문시계가 울리는 구(舊)시가 광장은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지금 프라하는 14세기 이후 수백년동안 번성했던 옛 동로마제국 수도로서의 명성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통계에 따르면 96년 현재 동유럽국가의 평균 구매력지수가 38인데 비해 체코는 67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도 체코의 실질적인 1인당 GDP가 이미 1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분석하고 있다. 동구국가 가운데 '자본주의 연습은 벌써 끝났다'는 평가는 동유럽 경제 우등생인 체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실시한 가격자유화 정책이 별 어려움없이 진행됐고, 두차례에 걸친 산업 사유화 작업도 순탄한 편이다. 체코 국영맥주회사 부데조비키 부드바르사가 좋은 사례다. 독일 못지 않은 맥주의 나라 체코. 체코에서 맥주는 '마시는 빵'과 같다. 연간 맥주 소비량은 1인당 150리터. 세계적 맥주 브랜드인 미국 '버드와이저'의 원조는 바로 체코의 맥주 명산지인 부드바르지방이다. 프라하에서 승용차로 2시간 가량 떨어진 이 지방은 오랜 전통과 질 좋은 맥주로 정평이 난 곳. 그 중심 도시인 체스케 부데조비체시에 있는 부드바르사는 최근 버드와이저 맥주와 70년에 걸친 상표권 분쟁을 마감했다. 대형산업의 사유화 작업의 일환으로 지방정부가 보유한 주식 40%의 매각과 매년 10만톤의 호프를 구매하는 조건으로 미국 버드와이저 맥주 생산회사 '안호이저 부시'사와 타협했다. 산업 민영화를 위한 체코의 노력을 읽을 수 있다.
눈부신 개방의 이면에는 그만큼 음영도 짙다. 동·서유럽 접경지대. 많은 동유럽 여성들이 매춘에 뛰어들고 있는 현장이다. 체코나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이어지는 국경도로에는 소위 '50-50'이라는 불리는 매춘 원정이 성행하고 있다. 화대를 택시기사와 반반씩 나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낮에도 승용차에 다가가 흥정을 벌이는 장면이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이뿐 아니다. 동구 개방이후 동유럽 여성이 본격적으로 서유럽으로 건너와 매춘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추산한 수만도 50만명에 이른다.
지난 9월부터 EU회원국과 인접국의 국경 검문이 대폭 강화됐다. 불법이민과 밀수로 골머리를 앓아온 EU집행위원회가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이전만 하더라도 아무런 제지없이 드나들 수 있었으나 최근 갑자기 감시가 심해졌다"며 일행을 태운 오스트리아 관광버스 기사가 귀뜸해 준다. 특히 EU외 지역 관광객들이 탑승한 버스의 경우 일일이 여권과 여행객을 대조, 통과시키는 바람에 입국 수속에 1시간씩 허비해야 했다. 개방이후 체코와 헝가리·폴란드 등 동구 3용(三龍)은 서유럽으로의 불법이민 중간기착지 역할을 해왔다. 동유럽국가들 가운데 경제 수준이 높고, 서유럽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점 등이 중간기착지가 된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 붕괴가 몰고온 주름살이다.
개방후 지난 10년동안 체코에 늘 무지개가 뜬 것은 아니다. 개혁 속도와 경제개발 모델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졌고, 슬로바키아의 분리 독립 등 정치적 부침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는 개방선두답게 체코의 선택이 맞아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고, 2002년을 목표로 잡고 있는 EU 가입을 위해 경제원조정책 개선과 제도 및 기구 개편 등 여러 전제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프라하에서 徐琮澈기자
댓글 많은 뉴스
李 대통령 "돈은 마귀, 절대 넘어가지마…난 치열히 관리" 예비공무원들에 조언
정청래 "강선우는 따뜻한 엄마, 곧 장관님 힘내시라" 응원 메시지
尹 강제구인 불발…특검 "수용실 나가기 거부, 내일 오후 재시도"
정동영 "북한은 우리의 '주적' 아닌 '위협'"
李 대통령 "韓 독재정권 억압딛고 민주주의 쟁취"…세계정치학회 개막식 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