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산 국제영화제 개막작 '박하사탕'

"너무 무겁게 보지 말아 달라"는 감독의 주문에도 '박하사탕'은 화한 맛 보다는 슬픔이 눅눅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간혹 곁들여 지는 유머도 반어적으로 쓰인 박하사탕의 맛 처럼 오히려 가슴을 저민다.

'초록물고기'로 한국 영화계를 놀라게 한 이창동감독의 두번째 영화 '박하사탕'이 1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처음 소개됐다.

'박하사탕'은 완전히 바스라져 버린 한 인간의 첫사랑의 꿈을 찾는 긴 여행 이야기다.

영화는 영호(설경구)가 1999년 봄 구로공단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의 야유회에서 달려오는 기차 앞에서 "돌아가고 싶다"고 절규하는 장면에서 시작한 뒤 79년 가을 같은 장소에서 야유회에 참석했던 젊은 영호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20년을 모두 7개의 시퀀스로 묶어 냈다.

'아침 이슬'을 부르던 청순했던 79년과 '나 어떡해'를 고함치듯 부르는 99년. 그 20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야유회 사흘전. 아내도 떠나고 자식도 떠나고, 완전히 파산해 자살을 꿈꾸는 영호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순임(문소리)이를 아십니까. 나는 순임이의 남편입니다. 아내가 당신을 보고 싶어 합니다"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죽음을 앞둔 첫사랑을 통해 영호는 악독했던 학원 사찰 형사, 광주항쟁 진압 군인, 구로공단 노동자의 인생 역정을 거슬러 간다. 망가질 수록 또렷해 지는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 그 온전했던 처음 그대로를 위해 카메라는 철로를 거꾸로 훑어 올라간다.

'박하사탕'은 '초록물고기'의 리얼리즘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소설가 출신 감독의 2탄 작이다.

시간을 거슬러 가며 한 인간과 울퉁불퉁했던 한국 현대사를 엮어가는 솜씨며, 차분하게 풀어가는 절제력에 스크린에 묻어나는 메시지 등 감독의 연출력이 압권이다. 신인 연기자 설경구의 '신들린 듯한' 연기도 일품이다.

특히 '초록 물고기'에서 보여준 리얼리즘은 '박하사탕'에서 신인 연기자로 인해 배가된 느낌이다. 물고문하다 말고 회식가는 고문 형사들, 고문 당했던 학생과의 어색한 만남등도 '천연덕'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담뱃갑, 신문 등 소품 등도 꼼꼼하게 챙겨 작가의 치밀함을 엿보게 해준다.

'박하사탕'은 일본 NHK에서 제작비 12억원의 15%를 투자했으며, 제작사 이스트필름(대표 명계남)은 내년 2월 베를린 영화제를 시작으로 세계 유수 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이다. 국내 개봉은 올 연말께.

金重基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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