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몰아닥치면서 지역 제조업은 곧바로 구조조정 태풍에 휩싸였다. 97년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1천455개 업체가 부도로 산업현장에서 퇴출됐다. 지역 대표업종인 섬유, 조립금속, 기계업체가 676개로 전체의 절반가까이를 차지해 특히 심했다.
피해 역시 막대해 대구·경북 제조업체 조업률이 56.8%까지 떨어지는 등 대부분 업체는 가동시늉만 냈다.
그로부터 2년. 산업현장은 전반적으로 빠른 복구를 보이면서 몇몇 업종을 중심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올들어 10월까지 부도업체는 모두 220개로 지난해 부도사태 때의 두달치에도 못미쳤으며 제조업체 가동률은 73%를 넘어섰다.
활력은 특히 산업단지에서 넘쳐나 지난해 76%였던 대구시내 4개 산업단지 가동률이 84%로 올라섰다. 92% 팔렸다가 IMF로 해약이 쏟아져 65%로 분양률이 떨어졌던 성서단지 3차 2단계 공장용지는 올해 8월 완전분양됐고 지금은 공장용지 부족을 걱정하는 단계가 됐다.
이같은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내적인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상장 대기업들에게서 구조조정의 한계는 잘 드러난다. 지역 25개 제조업체는 그동안 재무구조 개선에 앞장서 올해 상반기 결산결과 부채를 지난해 동기 대비 25%, 차입금을 13% 줄이는 등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것으로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7개 회사가 적자 및 차입금이, 4개사는 부채가 늘어난 데다 포항제철을 제외하면 매출액 순이익률은 -1.67%로 1천원을 팔면 17원을 손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조정 목표가 수익성 제고에 있는 데도 외형상 체질개선에 부심했을뿐 손해보며 기업하는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특히 워크아웃중인 갑을, 동국무역, 남선알미늄 등은 해외시장 진출, 합병, 자산매각 등 다각도로 경영정상화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일부는 오히려 부채가 늘어나는 등 어려움이 여전하다.
이에 반해 지역 제조업의 대표격인 섬유업계는 이 기간 상당한 구조조정을 이뤘다는 평가다. 중소기업이 많았던 만큼 부도 파고도 높았으나 98년들면서 비교적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98년 상반기 원화 평가절하에 따른 수출증가.
그 반사이익으로 많은 업체가 회생의 기회를 얻었고 상당수는 신제품 개발, 다품종 소량체제 구축, 해외시장 개척 등에 집중할 힘을 모으게 됐다.
올해 지역 섬유업계 지형이 폴리에스터직물 제직·염색 위주에서 교직물, 니트, 면직물 분야로 다양화된 것은 이같은 요인에 힘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올들어 9월까지 니트 수출은 전년대비 115%, 면직물은 136%나 증가했다. 이를 짜기 위한 에어제트룸 도입은 10월 현재 842대로 작년보다 7배 늘었다.
해외 수출시장도 다양화됐다. 중국 등지로의 수출이 97년 29%에서 9월 현재 20%로 줄어든 반면 미국,유럽, 동남아로의 수출은 늘어나 중국 의존도를 줄였다.
자동차 부품업계 역시 IMF 직후에는 2, 3차 업체의 연쇄부도와 조업중단에 시달렸으나 내수시장이 살아나면서 지금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역 특화업종인 공예와 안경업계는 최근 해외박람회에 참여하는 등 시장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조정과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정도의 수준에는 턱없이 못미친다는 데 있다.
소수 선도기업을 제외한 섬유업체 다수는 남 따라하기 관행을 버리지 못한 채 기술개발은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 이때문에 98년 반사이익이 진정한 구조조정을 지연시켰다는 평가까지 제기됐다. 또 자동차 부품업계의 호황은 시장상황이란 외부 힘 덕분이며 특화업종의 살길찾기는 이제 첫걸음이란 게 현재의 지역 제조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다.
李相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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