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표류 '위천단지' 현장

'위천'이 심한 외로움을 타고 있다. 공단을 만들겠다고 210만평이나 예정지로 지정해 10여년째 개발을 묶어 놓고는 이제 모두들 잊어 버리고 있기 때문. 가슴 타들어 가는 현지 주민들만 남겨진 것이다. 공단을 못만들면 깨끗이 포기하고 본래대로 생활할 수 있도록이라도 해 줘야 할 것이 아니냐는 원망이 가득하다. 불신 역시 심각하다.

◇버려진 주민들='단기간 내 해결'을 공약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는 끝날 날만 헤아리고 있는 중이다. 대구시로 봐도 이를 추진했던 시장이 바뀌었다. 새 시장은 남한강 물을 끌어 오겠다는 '낙동강 프로젝트'를 제시, 위천공단 건설에 대해서는 스스로 뒤로 물러선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5년이 흘러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가 눈 앞에 닥쳤다. 하지만 많은 후보들은 누구 할것없이 이 문제만큼은 피해가고 있다. '위천'이라는 이름조차 꺼내려는 정당이 없다.

"또 선거철이 된 모양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자신의 논이 700여평이라는 논공읍 삼리리 백명태(48)씨는 공단은 얘기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 다른 용도로 써보려 해도 땅이 1996년 공단 예정지로 묶여 '쥐꼬리' 농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부아를 돋우는 것 같았다. "몇년간의 진정에도 불구하고 농기계용 창고조차 지을 수 없습니다". 백씨가 택한 궁여지책은 외지인들이 사 둔 논밭 4천여평을 소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상리 마을 김수진(65)씨는 논 1천여평을 지난해 외지인들에게 팔아치울 수 있었던 것을 아주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빚이 늘어 땅을 팔려고 해도 매매가 안됩니다. 외지인들에게 땅을 팔고 소작이나마 할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다른 농가에선 많은 빚을 안고도 땅조차 못팔아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였다.

금포리 삼삼부동산 김무열씨는 "땅 매물은 한달에 10여건씩 나오지만 거래는 답보상태"라고 했다. 공단 조성 꿈에 부풀었던 IMF 이전에는 위천·상리 일대 농지 평당 가격이 30만원선까지 치솟았으나 그 후 1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하리 주민들은 아예 분노하고 있었다. 10년 넘게 공단지구로 지정돼 있는데다 일부는 온천지구로까지 묶여 2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 이 마을 변순용(65)씨는 "위천과 상·하리 일대 93만여평은 1991년에 이미 지방공단 예정지로 묶였고 약산온천 뒤편 토지 3만여평도 95년에 온천지구로 지정돼 완전히 갇힌 꼴"이라고 했다.그러면서 변씨는 이 마을 57가구 중 일부는 빚이 늘기만 하는데도 땅을 못팔아 경매처분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건축을 허용하라=달성군청은 전면 금지했던 공단예정지 내 공장 신축 등 개별 건축행위를 지난해부터 일부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용 범위가 너무 제한적이고 조건도 까다로워 주민 불만은 여전하다. 상리 일부 지역 중에서도 그나마 너비 4m 도로와 상하수도 시설을 갖춘 공업지역에만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

지난 4월 상리에 600여평의 철골 자재공장을 세운 홍희석(44)씨는 무려 3년간 행정기관을 들락거린 뒤에야 건축허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상하수도, 전기, 정화시설 등 전제 조건을 맞추느라 건축비가 결국엔 평당 80여만원에 이르렀다고 했다. 인근 고령·성주·창녕 등 지역이 기반시설을 다 갖춰놓고 공장을 유치 중인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대조적이라는 얘기.

500여평 땅에 공장건물 300평을 신축한 김명규(64)씨는 진입도로를 자비로 만들고도 담당 공무원들의 까다로운 조건 제시에 애를 먹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곳 제일부동산 이용남씨는 "공장 신축이 허용된 상리지구의 평당 거래가격은 30만~40만원으로 형성돼 있고 공장 신축을 위한 문의가 적잖으나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했다. 외지인 소유 땅이 50%에 달하고 건축 행정도 규제 쪽에 집중돼 공장 허가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 공단부지로 묶인 뒤 지금까지 건축허가를 받은 것이라고 해야 공장 16건과 축사 3건 등이 전부이다. 그나마 15건은 논공읍사무소 처리 대상인 500㎡ 이하 소규모이고, 달성군청의 공장 허가는 4건에 불과하다.

공단 배후 주거지 개발 대상으로 지목되던 삼리1리와 금포2리의 준농림지 10여만평에 대한 건폐율 규제도 주민들의 불만거리이다. 이곳에 땅 2천여평을 갖고 있다는 조영수(51)씨는 "성주·고령·경산·칠곡 등의 건폐율은 40%에 달하고 광주는 60%나 되는데도 이곳은 공단 건설에 대비한다며 20%로 묶여 있다"고 했다.

◇결단을 빨리 하라=공단을 빨리 건설하든지 아니면 포기하고 대상지 지정이라도 해제하든지, 하루라도 빨리 결정해 주기를 주민들은 바란다고 했다.

삼리리에서 만났던 백명태씨는 "속이기만 하는 정치권을 믿을 수 없으니 주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공업단지로 묶은 대구시가 책임지고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같은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라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조해녕 대구시장의 낙동강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결국엔 중앙정부나 정치권이 위천공단에서 발을 뺄 명분만 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적잖았다. 심지어 달성군청 관계자까지도 "수조원의 돈과 몇년이 될 지 모를 세월이 지나야 성취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낙동강 프로젝트에 매달린다면 위천공단 조성은 다시 10년을 허송세월할 것"이라고 했다.

달성상공회의소 최종국 조사팀장도 "대구의 산업구조와 도시 배치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위천공단이 질질 끌기만 함으로써 이제 공장들까지 다른 지역으로 모두 뺏기고 있다"고 말했다.

강병서기자 kb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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