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2 대선-역대 대선 표심 흐름

19일 투표를 끝으로 막을 내린 16대 대선은 지금까지 직선으로 치러진 10번의 대선 중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인 선거중 하나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전이 31년만에 양강 구도로 전개된데다 역대 대선과 비교할때 선거 무관심층으로 분류되던 20.30대 젊은층이 표심을 가르는 뚜렷한 정치성향을 나타내면서 세대간 대결 양상이 두드러졌다. 또 지금까지 심각한 양상을 보였던 지역대결 구도가 이번 선거전에서는 누그러진 것도 지켜볼만한 표심의 변화로 보여진다.

역대 대선중 가장 적은 표차로 당락이 갈린 대선은 63년 실시된 5대 대선이었다. 당시 박정희 후보는 윤보선 후보를 불과 15만6천여표 차이로 따돌렸다. 박 후보가 얻은 총득표는 470만표(46.6%)였고 윤보선 후보는 454만표(45.1%)를 얻었다.

하지만 득표율로 보면 1, 2위간의 격차는 1.5%로 지난 15대 대선과 비슷했다. 당시 선거결과를 분석해보면 가장 큰 특징은 '여촌야도' 현상이었다. 윤 후보는 서울에서 박 후보보다 2배 이상 득표한 것을 비롯 인천, 대전, 광주 등 대도시에서 우세를 보였고 박 후보는 전북, 전남, 경북, 경남 등 농촌지역에서 크게 앞섰다.6대(67년) 대선에서도 이들 두 후보가 다시 맞붙었으나 박 후보가 568만표(51.5%), 윤 후보가 452만표(40.9%)로 표차가 종전보다 더 크게 벌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이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첫 대권도전에 나선 7대 대선에서는 박정희 후보측이 3선 개헌의 정치적 부담을 지역 감정으로 희석시키는 전략을 구사, 처음으로 영호남 대결구조가 극명하게 나타난 선거였다. 그 결과 박 후보가 634만표(53.2%)를 얻어 539만표(45.3%)를 받은 김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당시 두 후보의 도별 득표는 전북(30만 대 53만), 전남(47만 대 87만), 경북(133만 대 41만), 경남(89만 대 31만표)으로 완연하게 갈렸다.

직선이 부활된 87년 실시된 13대 대선때는 대구.경북(노태우), 부산.경남(김영삼), 호남(김대중), 충청(김종필) 등 각 지역출신 후보가 나와 70년대 형성된 영호남 지역주의가 소지역주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노 후보는 대구(70.7%)와 경북(66.4%)에서, 김영삼 후보는 부산(56.0%)과 경남(51.3%)에서, 김대중 후보는 광주(94.4%) 전남(90.3%) 전북(83.5%)에서, 김종필후보는 충남(45.0%)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김영삼.김대중.정주영 후보가 나와 3파전을 벌인 14대 대선때는 영남출신의 김영삼후보와 호남출신의 김대중후보의 치열한 접전으로 영호남 지역감정이 다시 한번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과는 영남을 기반으로 둔 김영삼후보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김대중.이회창.이인제 후보의 3강 구도로 진행된 지난 15대 대선에서는 김종필씨의 지지를 등에 업은 김 후보가 전체 유효표 가운데 40.3%인 1천32만6천여표를 얻어 이회창 후보를 39만표 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15대 대선에서도 호남.충청권과 영남권이 표심에서 갈라지는 지역주의 구도를 보였다.

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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