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새 대통령을 위하여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회에서 내놓은 정례 브리핑 자료의 표지 한 켠에 또렷이 인쇄돼 있는 이 말은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 이후 달라진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중 하나이다.

듣기 싫지는 않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짧은 현대사에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통령을 가져보지 못한 우리 처지에서 새로운 정권의 탄생을 앞두고 내놓은 이 진언이 세월이 지나면서 '또 한 사람의 신파극 주인공을 만들지는 않아야 할 텐데…' 하고 새 정권과 함께 등장할 새 인물들에 대한 이런저런 상념들을 갖게 만든다.

측근들 횡포 막아야

서문표라는 사람이 중국 전국시대 위(魏)나라 문공 때 업이라는 고을의 현령으로 있을 때의 얘기다.

스스로 청렴하고 극기하면서 백성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현을 다스렸다.

그러면서 왕의 근신들에게는 원칙대로 대했다.

뇌물을 바치지 않은 것은 물론, 요즘말로 감사를 왔을때도 소홀히 대했다.

그랬더니 당연히 파직을 당했다.

근신들이 형편없다고 보고서를 올린 때문이었다.

왕을 찾아 간 서문표는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 이번에도 못하면 사형도 감수하겠다"며 목숨을 걸고 청원해서 관인을 되돌려 받는다.

그는 이번에는 아주 근신들을 위해서 정치를 한다.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짜내 근신들의 환심을 샀다.

근신들에게서 후한 점수를 받은 그는 왕으로부터 "다시 한 번 태수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지만 기어이 사양한다.

"

지난번 왕을 위해 업을 다스렸더니 파직을 시켰고, 이번에는 왕의 신하들을 위해 일했더니 칭찬을 받았다"는 말을 남기고.

공무원들에게 골프를 금지시킨 대통령이 있었다.

민원인과 유착하지 말라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러자 일부 공무원들이 "자연인으로 친구와 어울려 운동하는 것까지 못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등의 핑계를 대며 더러는 가명으로 골프를 치기도 했다.

공직자라고 친구가 없을 수 없다.

그렇지만 공직자이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친교 또한 없을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공직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만남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연인으로서 친구라는 이유를 들먹이면 곧이곧대로 선뜻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학연, 혈연, 지연은 물론 없는 줄도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곳이 우리 풍토이고 인사에서나 공사수주 등 말썽이 될 때마다 이런 줄이 뒷배경이 되었음을 우리는 너무나 흔히 보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정권이 바뀔때마다, 또 선거때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을 없애겠다고 정권담당자나 후보자들은 공약하곤 했다.

최근 지역의 한 고급공무원은 "앞으로 5년을 또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라 실토했다.

예산 문제 등 일이 있을때마다 중앙부처에 올라갔다가 냉대받은 것을 생각하면 분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깍듯이 '형님' 하던 고시 후배(타지역 출신)가 어느 사이 요직에 앉아서는 지방에서 올라간 옛날 '형님'에게 "별 일 없어?"하면서 야대할 때 속으로는 "이놈, (12월) 20일 이후에 보자" 하고 속을 쓸어내렸다는 것. 그런데 또다시 5년을 꼼짝없이 당하게 생겼으니 이를 어찌 할 것이냐는 하소연이었다.

대통령 당선자의 아들이 기업체에서 보통 회사원으로 살고 싶다고 기자회견을 했을 때는 참으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대통령의 아들들, 지금도 여전히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처해 있기까지 한 우리의 현실에서 그것은 용기있는 선언이었다.

그의 말에서 대통령의 아들을 자연인으로 놓아주지 않는 사회 풍토를 너무나 극명하게 읽을 수 있었다.

새 시대 부응 인물 중용을

이제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서부터 각 부처 장관이 자리바꿈하게 되면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국영기업체와 각종 정부투자기관 등 온 나라가 자리바꿈으로 요동칠 것이다.

부디 새로 맡는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각오들을 실천해 나갈 인물들이기를 바란다.

그들은 적어도 자연인으로서의 '자유'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도 필요하다.

물론 우리 사회도 이제 더이상 그들을 각종 인연의 끈으로 묶어 매는 행태도 줄여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은 새로운 인사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불이익을 당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정권의 성공을 위하여.

이경우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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