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소중한 수택(手澤) 중에 아버님의 시간이 묻어 있는 책상이 하나 있다.
그것은 책 한 권과 독서등 그리고 소사전 하나 올려놓으면 딱 알맞은 자그마한 크기이지만 나에게는 정갈하고 아름다운 시 한 수, 수필 한 편 읽기 위한 넉넉한 시간이자 공간이다.
그 책상에는 특이하게 앞쪽 양다리에 두 개의 글귀가 음각 되어있다.
좌측에는 '백운일편유유거(白雲一片悠悠去)'란 어느 한시의 시구이고, 우측은 '남북통일(南北統一)'이란 정치 구호 같은 글귀가 서로 어울리지 않게 나란히 새겨져 있다.
나는 아버님께 이 어울리지 않은 두 글귀가 나란히 음각 되어 있는 이유를 여쭤볼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놓쳐버렸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 책상 앞에 앉아 이 글귀에 담긴 당신의 생각을 유추해 보곤 한다.
'백운일편유유거(白雲一片悠悠去)'는 당신이 만년에 느끼는 인생을 초월한 심정의 일편일 것이다.
삶과 죽음을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며 죽음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초월적 삶에 도달한 만년의 의식이 뚜렷이 보인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의미를 찾고 또 그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것을 인정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 허무의 벼랑 끝에서 던진 마지막 일성일 것이다.
허무의 벼랑에서 떨어져 바닥을 치고 오르는 초월의 비상이 이 '백운일편유유거(白雲一片悠悠去)'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우측 음각의 '남북통일(南北統一)'이란 글귀는 아주 실제적인 염원이다.
'남북통일(南北統一)'은 우리 민족의 절대적 한이고 슬픔이자 염원이고 희망이다.
또 분단에 의한 전쟁의 위험이 상존한 우리나라에서 전쟁의 비참함을 체험해 왔던 세대로서 자식과 후손이 전쟁의 희생에서 벗어나기를 극히 소망하였다고 생각한다.
비록 자신이 이산 가족은 아니더라도 전쟁이 가져오는 이별과 그리움이 인간의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의 감정이라 여겨졌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한 노 교수가 만년에 갖는 개인적인 인생관과 그것과는 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회적인 염원의 두 정신적 축을 보았다.
아버님은 결국 매일신문에 '백운일편유유거(白雲一片悠悠去)'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짧은 소설을 남기시고 3 개월 후인 1992년 11월 15일 한 조각 구름이 되어 흘러가셨다.
안과 전문의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주진우, 김민석 해명 하나하나 반박…"돈에 결벽? 피식 웃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