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맨발의 기자'와 네티즌들

모택동의 공산당 시절 당 선전 기관지였던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중국 전역에 기자증 없는 속칭 '맨발의 기자'라는 300여만명의 여론수집꾼들을 거느렸다.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지역의 정치적 정보사항이나 주민동향 및 사건, 뒷얘기 등 갖가지 여론을 경쟁적으로 보내왔다.

본사에는 이들 맨발의 기자들이 보내오는 엄청난 양의 여론과 정보들을 분류 정리, 보도하는 전담부서를 둬야했을 정도로 정보량이 폭주했다.

전문기자 교육도 받지않고 자격증도 보수도 없이 맨발로 뛰면서 정보를 캐고 다녔다는 뜻에서 '맨발의 기자'라는 별칭을 붙인 이들 여론몰이꾼들은 한마디로 신문지면에 이름이나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채 떼거리 여론을 만들어 내면서 사회를 집단최면시키는 여론선전꾼 역할을 했다.

정보교류의 순기능보다는 정치적 역기능이 더 컸던 것이다.

요즘 대선이 끝난뒤 인터넷에는 얼굴도 없고 실명도 분명찮은 투명인간 같은 일부 네티즌들의 국론분열에 가까운 수준의 이념공방이 갈수록 도를 넘고있다.

친 노무현측 네티즌들과 반 노무현측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상호 치고받는 논쟁은 기본이고 언론사의 사설이나 기사에까지 노무현 그룹을 비판.지지한 글에는 글꼬리를 잡고 시비를 거는 사례도 빈번하다.

간혹 귀담아 들을만한 좋은 충고도 있지만 내 맘에 안드는 주장이나 의견은 철저히 깔아뭉개야 직성이 풀리는 듯한 전투적이고 호전적 사고가 팽만해있는 시비도 적지않다.

나의 정치사상과 이념, 가치관만이 절대선(善)이고 정의라는 독선에 찬 아집을 여론이란 허울로 또는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로 삼아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자의 여론이나 표현의 자유를 묵살하고 짓밟으려든다.

통합과 개혁을 지향하는 사회에 요구되는 여론이란 어둠속에 얼굴을 가리고 변조된 음성으로 떠들어대는 떼거리 시비나 구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목소리가 크고 떼거리 숫자가 많다고 그것이 곧 정의롭고 절대적 선이며 더 정당한 여론이라고 우겨서는 안된다.

작은 목소리, 한두명의 의견이라도 떼거리 여론보다 더 정의롭고 정당한 여론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 해주는 것 또 그런 토양과 분위기를 만들고 조장하는 것이야말로 여론정치의 기초적인 전제조건이다.

언론자유의 신봉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140여년전 그의 60페이지짜리 '자유론'에서 오늘날 우리 한국의 네티즌들과 특히 정권 인수위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명언을 남겼다.

'모든 사람이 한가지 의견을 가지고 있고 오직 한사람만이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을때 그 한사람이 힘이 있다고 해서 나머지 모든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는것 처럼 모든 사람이 그 한사람을 침묵 시키는 것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는 여론의 '압력'이 결과적으로 사회를 순응자들의 사회로 만들 가능성이 있고 순응(또는 복종)은 사회를 무지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인수위가 출범 이후 검찰, 행정부처, 공정거래위 등 정부기관과 계속 마찰을 빚고있는 가운데 노동부 업무보고 회의장에서는 민주노총 산하기구 출신인 한 인수위원이 노동부측이 자기의견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는 이유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누가 반대의견만 내놓으면 떼지어 달려들어 공격해대는 네티즌의 행태와 배타적 면에서는 흡사하다.

어느 전경련 인사는 '인수위의 목표는 사회주의다'는 발언으로 책임공방이 뜨겁다.

대선 이후 부쩍 늘어난 이런 적대적 분위기들이 과연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사랑과 평안한 신뢰를 얻어낼까를 생각해 보면 암울하기까지하다.

감사원에 언론사 과징금 취소 특별감사를 청구한 인수위가 '네티즌들의 요구가 있어서 감사청구를 했다'고 답변한 보도에서는 이 사람들이 이 나라에 국민은 네티즌밖에 없는줄 착각하고 있는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근거리에서 설치는 네티즌들만이 국민이 아니다.

절대 다수 네티즌들은 투쟁적인 논쟁보다 새 지도자 그룹이 '국민들의 공감'속에 '합리적 개혁'을 '겸허한 자세'로 강하게 추진해 내느냐 못하느냐를 냉정하게 관망하고 있다.

말없는 건전한 네티즌들, 그리고 컴맹세대의 조용한 침묵이야말로 진정한 여론임을 알아야 한다.

국사(國事)가 호전적 소수 네티즌의 떼거리 여론이나 남의 의견을 존중 못하는 과격 인수위원 몇몇에게 끌려다닌데서야 개혁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 네티즌 여론은 건전해야하고 건전한 네티즌 여론 형성을 위해서는 네티즌들의 여론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

모택동이 맨발의 기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듯 네티즌의 여론을 국정감사 청구같은 정치적 빌미로나 이용하려들면 건전한 다수 네티즌들은 어느날 갑자기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돼 있다.

어제 노 당선자가 인수위에게 상대의견을 존중하라고 충고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金廷吉(부사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