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편지

얼마전, 낯선 도시의 주소가 적힌 빨간 색 봉투의 편지가 왔다.

겉봉엔 '친구가'라는 글자가 인쇄돼 있었다.

누굴까? 얼른 뜯어보니 휴대전화 업체의 광고 전단이었다.

지난 90년대만 해도 사람들은 드문드문 편지도 주고받았고 연말연시엔 카드나 연하장도 날아왔다.

그러나 새 천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이런 류의 사적 우편물은 확 줄었다.

이젠 컴퓨터 속의 사이버 공간에서나 볼 수 있다.

화면이 사르륵 사르륵 바뀌는 컴퓨터 속 카드는 앙증맞고 예쁘고 세련돼 보인다.

그러나 누룽지가 생기지 않는 전기밥솥으로 지은 밥마냥 구수한 뒷맛이 없다.

잡동사니 우편물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편지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하긴 컴퓨터로 따다닥 써버리면 우표 살 일도, 우체국에 갈 일도 없이 다 해결되는데 뭣하러 그 번거로운 편지를 쓸 것인가.

지난 1970년대, 어니언스가 불렀던'편지'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청년들은 막걸리를 마시며'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 속 울려주는 눈물젖은 편지~'를 목청껏 부르곤 했다.

그 시대만 해도 연인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편지를 써보내는 일이 흔했다.

지금 40, 5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편지상자 한두개 쯤은 가지고 있을만큼.

만약 '세기의 편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아마도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편지가 아닐까. 중세의 저명 신학자인 아벨라르와 그의 제자이며 훗날 역시 함께 수도자가 됐던 엘로이즈의 금지된 사랑은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지금까지도 가장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그러면서도 승화된 사랑의 전형을 보여준다.

반면 편지가 고약한 동취(銅臭:돈냄새)를 푹푹 내뿜는 예도 많은 것 같다.

영국의 고 다이애나비의 애인이었던 제임스 휴이트는 최근 "아주 큰 돈을 제시한다면 5년간 다이애나비로부터 받았던 연애편지를 팔 생각"이라고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더군다나 휴이트는 내용이 심한(?) 10통의 편지는 이미 400만 파운드(약 72억원)에 팔아버렸다고 했다.

또 몇 년전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샐린저가 27년전 한때의 연인에게 보냈던 편지 14통이 연인 조이스 메이나드에 의해 소더비 경매에서 2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21세기는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종이 편지를 쓰지도 받지도 않는다.

편지는 이제 정지된 시간의 추억으로나 마음 속에 남아있을 뿐.

주말이면 시골 농가에서 머무는 한 지인은 지난 해 집 입구에 작고 예쁜 우편함을 만들어두었다.

얼마 후 우편함을 들여다본 부부는 깜짝놀랐다.

기다리던 편지는 없고 산 새가 낳은 알만 소복이 들어있었다.

귀여운 무단침입자들은 우편함 속의 안락함을 맘껏 누렸지만 부부는 편지가 사라진 세태가 아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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