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나푸르나 트레킹

구름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사철 만년설을 이고 있다.

'눈의 집' 히말라야. (산스크리트어로 눈이란 뜻의 '히말'과 집이란 뜻의 '알라야'의 복합어). 이제 히말라야는 더 이상 전문산악인들이 목숨을 걸고 오르는 등반코스가 아니다.

배낭여행 대학생도, 만년설을 꿈꾸던 초보 등산객도 칼날 얼음벽의 웅장함을 찾아 나선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에베레스트, 랑탕, 안나푸르나 세 곳에 집중돼 있다.

그 중에서도 안나푸르나는 숲이 많고 롯지를 비롯한 숙박시설이 많아 가장 인기있는 코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 제2의 도시 포카라를 거쳐 나야폴에서 시작한다.

나야폴은 포카라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 깎아지른 절벽과 끝없이 펼쳐지는 계단식 밭을 지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고라파니(2,750m)까지 오르는 길은 숲이 울창해 히말라야의 또다른 맛을 보여준다.

1천m~3천m의 구릉지대여서 산소부족에 따른 고산병으로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코스. 만년설을 품은 안나푸르나 남봉이 피곤함을 잊게 한다.

고라파니의 새벽은 부산하다.

푼힐 전망대에서의 일출을 위해 서둘러야 하기 때문. 산길을 따라 헤드랜턴 불빛이 길게 이어진다.

영어, 일어, 독어, 한국어가 뒤섞여 고갯길이 왁자지껄 시끄럽다.

한국에서 온 트레커들도 제법 많다.

푼힐 고갯마루에 서면 바람이 제법 차다.

하지만 붉은 햇살이 만년설 위로 쏟아질 즈음이면 경건해진다.

3,210m. 산허리에 걸쳐진 구름보다 더 높아 일출이 더 환상적이다.

12월 31일, 한해의 마지막 태양이어서일까. 붉게 물든 마차푸차레(6,248m), 히운출리(6,441m), 안나푸르나 남봉(7,219m)이 감격적이다.

고라파니 동쪽 능선을 올라 타다파니(2,590m)로 이어지는 길은 밀림지역. 간간이 원숭이들이 절벽에 매달려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고산지역이어서일까. 날씨가 순식간에 변한다.

새벽녘의 웅장한 일출은 간곳없고 서서히 흐려지더니 함박눈을 뿌리기 시작한다.

맨발로, 슬리퍼차림으로 내리막길을 뒤따르던 포터(짐꾼)들이 걱정된다.

촘롱(2,170m)지역까지는 계단식 논밭이 장관이다.

산 아래에서 까마득한 높이까지 층계를 알 수 없을 만큼 층층이 개간돼 있다.

벼농사와 감자를 주로 경작한다지만 고산지대의 고단한 삶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촘롱에서부터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만끽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 마차푸차레의 빙벽과 만년설이 눈가에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힘든 오르막길을 마주칠 때마다 나타나 힘을 준다.

도반(2,286m)을 지나자 서서히 눈이 많아진다.

이때까지 극기훈련처럼 서둘렀던 일정도 고소에 적응하기 위해 늦췄다.

원정등반대도 하루 1천m를 높이지 않는다고 가이드 다와가 주의를 환기시킨 덕분이다.

데우라리(3,230m)에서의 모처럼만의 여유는 밤까지 이어진다.

난방이 전혀 안되는 숙소를 나와 모두가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가족, 독일에서 온 일행 4명도 지도를 펴들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를 가늠해본다.

이곳의 진정한 장관은 만년설로 뒤덮인 봉우리들이 아니다.

히말라야의 진정한 가치는 밤이면 또렷해진다.

새벽녘 무심코 쳐다본 하늘은 그야말로 별천지. 수많은 별들이 머리위로 쏟아진다.

하늘에 별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다음날 무릎높이까지 빠지는 눈길을 오르기 세시간. 드디어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일명 MBC)에 도착했다.

히운출리, 안나푸르나 남봉(7,219m), 텐트피크(5,663m), 안나푸르나3봉(7,555m), 마차푸차레(6,248m) 등 6천~7천m가 넘는 설산들이 주위를 둘러싼다.

고소로 인한 두통까지 씻어주는 시원하고 장쾌한 풍경에 모두가 넋이 빠질 정도. 여기서 목적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일명 ABC)까지는 완만한 구릉지대다.

안나푸르나의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 고봉들이 빙 둘러싸고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꼬박 6일이 걸린 산행임에도 피곤함을 잊어버린다.

ABC에선 마음이 급하다.

이곳서 밤을 새며 경관을 즐겨보리란 생각은 사치. 사람들따라 고소증세도 다양하다.

두통, 위장장애에 다리까지 풀리고 나면 빨리 하산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산길은 아쉬움뿐이다.

몸무게 만큼이나 나갈 큰 짐을 머리끈 하나로 지탱하고 지나는 포터들을 비켜서며 자꾸 만년설을 뒤돌아보게 된다.

셰르파들의 전통악기 연주, 짐꾼들의 피리소리, 마주치는 외국인들과의 대화마저도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협찬〉혜초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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