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몸에는 무협의 피가 흐른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이안이 '와호장룡'을 만들었고 2003년 벽두, 중국 제5세대 선두 감독 장이모우까지 화려한 무협영화 '영웅'을 내놓았을때, 우리는 그들에게서 태생적인 무협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제트 리로 할리우드에 잘 알려진 리롄제(李連杰). '와호장룡'의 제작자 빌 콩, '화양연화'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일본 영화 '란'으로 아카데미 의상디자인상을 수상한 에미 와다.
스태프의 면면이 영화 속 색감처럼 화려하다.
여기에 장만위(張曼玉), 량자오웨이(梁朝偉), 장쯔이(張子怡) 등 중국어권의 톱스타에, 투입된 인원만 6천500명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 '드림팀'의 할리우드식 공략이 외형적 '영웅'의 틀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처음으로 대륙 통일을 눈 앞에 둔 진왕(秦王) 영정. '전국 7웅'의 나머지 여섯 국가의 가장 큰 암살 표적이다.
가장 큰 자객이 전설적인 무예를 지닌 은모장천과 파검, 비설. 이에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백보 금지령을 내렸다.
어느 날 한 미천한 장수 무명이 세 개의 칠기 상자를 가지고 영정을 찾아온다.
그가 세 명의 자객을 모두 처치했다며 증거물을 담아온 것이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영정이 추측하자, 무명은 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영웅'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처럼 한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것은 화려한 형식미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트래픽'과 같이 서로 다른 색감으로, 다른 공간 시퀀스를 묘사하는 것도 장이모우 답다.
'와호장룡'이 와이어 액션만을 고수했다면, '영웅'은 화려한 색감과 검에 베이는 빗방울까지 잡아낸다.
고속 저속 촬영을 종횡무진하며, '매트릭스'에 '소오강호', '와호장룡'을 입힌 것같은 크리스토퍼 도일의 촬영은 혀를 내 두르게 한다.
특히 호수 위에서 벌이는 첫 대결은 압권이다.
그래서 '영웅'에 이르러 통속적인 '무협'이 신화적인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게한다.
'무협'이란 이름은 이제 중국권을 떠나 세르지오 레오네식 스파게티 웨스턴의 뒤를 잇는 할리우드 메뉴가 될 듯해 보인다.
주인공 무명(無名)은 스파게티 웨스턴의 '무숙자'(無宿者)와 'Nobody'와 다름아니다.
러닝타임 98분이라는 '황금 타임', 일류 스태프의 명성, 영상언어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형식미, 무(武)와 예(藝)를 도(道)의 경지로 풀어주는 신비주의에서 세계시장을 겨냥한 티가 역력하다.
그러나 화려한 형식미에 비해 '영웅'이 주는 알맹이는 공허하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세계관은 현대 중국 정부가 바라는 이념이다.
그래서 "체제 순응적인 오락영화"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어차피 무협영화란 그런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할 수 없다.
와이어에 의지한 무협의 황당함과 가공할 과장만으로도 만족한다면, 보라. 사실 그것이 무협영화의 미덕이기도 하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주진우, 김민석 해명 하나하나 반박…"돈에 결벽? 피식 웃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