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산격동 유통단지 부근 금호강변 소규모 공장 밀집지역. 젊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일대 출근길 모습에 이번 달부터 '은빛 사람들'이 섞여 들었다.
그것도 한 두명이 아닌 무려 7명이나 아침마다 '성신식품'이라는 간판이 내걸린 단층 건물로 몰려든다.
60대가 2명, 50대 후반이 5명. 나이로야 아직 장년일지 모르지만 이들은 그것과 상관 없이 벌써 '노인'이라는 레이블이 붙어버린 은퇴자들. 그리고 이들은 닭똥집·닭발을 가공하는 이 공장에서 새 인생까지 손질하고 있다.
권영기(58·성당동)씨는 우방상호신용금고 관리부장 출신. 그는 이 공장에서 난생 처음 화이트칼라가 아닌 현장의 블루칼라가 됐다.
종일 일하고 받아 가는 돈은 하루 2만여원. 혼자 오는 것도 아니다.
아내도 동행. 아내는 이 공장에 오면서 처음 '출근'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돈이 없어서 이러느냐고요?. 아닙니다.
상가 건물도 있습니다.
꼭 돈으로 환산하자면 제 재산이 몇 억원은 넘을 겁니다.
그렇지만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제 나이에 집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할 일 없는 고통입니다.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여기 나옵니다". 난방이 시원찮고 노동강도는 만만찮지만 권씨는 일하는 것 자체가 즐겁고, 일한 만큼 받는 성과급제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또다른 실버 동료 김영숙(58)씨는 아예 이 공장 예찬론자가 돼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뭐든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구입니다.
출근할 데가 있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지요".
이들 7명은 누구 없이 현재의 일에 초보자들이다.
닭똥집·닭발이라면 식당에서 먹어 본 인연밖에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걸 만드는 일에 너나 없이 열심이다.
과거에 무슨 일을 했든, 지금은 오직 닭똥집·닭발 가공 인력일뿐 이라고 이들은 말했다.
지난해 말 공장을 개업한 성신식품 이재훈(34) 사장은 꼼꼼한 작업에는 젊은이가 '실버'를 못따른다는 게 지론이다.
"처음엔 구인광고를 내 젊은 직원들도 몇 명 채용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드신 분들과의 사이에 금방 우열이 가려졌습니다.
음식물 공장에서는 있어서 안될 실수를 젊은이들은 적잖게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드신 분들은 그러잖았습니다". 이 사장은 이런 과정을 통해 '실버 사원'에 신뢰를 굳혔다고 했다.
실버 공장의 매출은 점점 늘어 요즘은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 개업 초기이지만 월 매출이 5천만원에 육박한다고 했다.
"새 정권은 '개혁 대통령 안정 총리'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만, 우리 공장의 슬로건은 '신구(新舊)의 조화'입니다". 이 사장은 "사장이 사원으로부터 한 수 배우는 공장은 여기가 유일하다"고 자랑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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