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이고 과학적인 안목에서 추진돼야 할 대형 국책사업인 경부고속철 대구 도심 통과 방식이 10여년째 확정되지 못하고 방향성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이 문제는 시민 생활권과 직결된 것인데도 정부는 정치적 판단의 대상으로 해석해 문제를 일으켜 왔다.
이번의 재론 역시 또다시 정치적인 논리로 시작됐다.
이 논의는 단 한번도 정치적인 논리와 정치적인 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때문에 객관적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도 없었다.
이번에도 사태의 본질을 읽지 못한다면 또한번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0년 전 대구 시민사회가 결집된 목소리로 일관되게 주장했던 바의 정당성과 사태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중앙정부는 다시 한번 국책사업의 합목적성을 망각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시민들 일관된 목소리 내야
1992년 6월5일 당시 교통부는 고속철이 대구 도심을 지하로 직선 통과하는 새 노선 29km를 건설키로 확정, 열람도를 대구시에 송부했다.
이어 9월에는 4회의 지역 설명회까지 완료했다.
이 과정에서 대구 지역사회 의견이 충분히 반영됐고 대구시, 교통부, 철도청, 교통개발연구원, 고속철도기획단, 고속철도건설공단 등도 충분히 협의하고 동의했다.
교통·환경 영향 평가도 실시됐다.
나아가 1993년 6월3일엔 신설 지하노선 실시설계와 관련해 고속철도공단에서 도로 횡단 구조물 관련 협의를 대구시에 요청, 대구시는 7월23일 답변을 보내는 등 후속 조치 협의까지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중이던 1993년 6월15일 언론에서 경부고속철 건설 계획의 수정을 보도했다.
8월4일엔 고속철도건설공단이 대구 도심 구간 노선의 전면 변경 및 경부선 부지를 이용한 병행 지상화를 일방적으로 대구시에 통보했고, 9월7일에는 교통부도 대구시에 같은 내용을 통보했다.
그 후 대구 시민들 사이에 엄청난 동요와 반발이 일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역 언론, 시민단체, 시의회의 대응이 조직화 적극화되면서 헤아릴 수 없는 문제점들이 지속적으로 불거졌다.
노선 변경과 지상화 결정 과정에서 중앙정부는 대구시와 아무런 협의도 않았음이 차후 시민단체의 대응활동 과정에서 밝혀졌다.
건설비 절감만 내세운 고속철도건설공단의 즉흥적인 단순 논리가 결정을 좌우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절감될 것이라는 건설비의 당시 추정액은 2천83억원이었으나, 그마저 객관적이지조차 못한 산술치로 제시됐을 뿐이었다.
나아가 이런 문제점을 감추기 위해 변경 노선과는 아무 상관성 없는 '역세권 개발'이라는 이슈를 부각시켜 대구시와 시민들의 관심을 오도하려는 홍보에만 급급했다는 의혹까지 샀다.
지상회땐 사회적 비용 막대
그러나 교통부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전혀 없다.
국가 예산 절감이 명분으로 제시됐지만, 고속철을 지상화할 경우 대구시민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도시 구조의 파괴, 시민 생활 질의 현격한 저하가 그것이다.
부지 평균 너비가 22m에 불과한 대구 도심 경부선 철로는 남북 생활권을 분리시킴으로써 도시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이번 사태를 맞아 중앙정부가 명확히 해야 할 첫번째 인식은, 도시계획 지역 내의 국가 교통계획은 반드시 현지 시민들과의 협의와 조정 과정을 거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결정 통보하는 구시대적인 방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역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민주적 계획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지금의 시대정신이다.
중앙정부에 필요한 두번째 인식은, 고속철 건설을 도심 여건을 오히려 개선시킬 계기로 삼고자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경부선으로 인한 도시 발전 장애요인들까지 동시에 극복하려는 보다 진척된 자세가 필요하다.
대구시민 중심의 적극적인 태도가 필수적인 것이다.
국책사업 본래취지 생각을
이번 만큼은 반드시 철로의 도심 통과 구간을 '병든 지역'에서 '건강한 지역'으로 되태어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역사 앞에 선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대구시민들도 이를 투철히 인식해야 함은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나고야 도심 고속철 사건이 그런 전범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고야 시민들은 신간선 도심 구간 7km 인근을 '병든 지역'으로 명명하고 그 건강성 회복을 위해 개통 다음해인 1965년부터 나고야시 및 일본 국철 등을 상대로 소송과 대응을 계속했다.
그리고 20년도 더 싸운 끝에 1986년 일본 국철로부터 화해금 4억8천만엔을 받아 내고 개선 대책들을 수용토록 해 냈다.
대구 도심 통과 방안의 문제와 관련된 시민적 요구는 단순히 지상화냐 지하화냐에 머물지 않는다.
방향 감각을 상실했던 중앙정부의 존재 목적의식 회복, 중요한 국책사업이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소중한 기회가 되는 것, 대구시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구 시민사회의 저항을 감당하기가 결코 쉽잖을 것이다.
최 현 복
(대구흥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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