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시 위상 상실 지역민심 어디로...

지하철 방화 참사와 사고수습과정을 지켜보는 지역민들의 시각은 참담하다.

어처구니 없는 참사원인은 둘째치고라도 중앙정부까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더욱 가슴 아프다.

물론 대구시와 지하철공사 등이 사고 수습과정에서 신뢰를 잃어버리고 대처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또 사고의 직간접적인 책임을 면키 어려워졌다는 점도 중앙정부의 개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다소 성급한 분석이긴 하지만 대구가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장 비우호적이었다는 점에서 출범 1주일째인 현 정권에게 이번 대구 참사는 남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특히 정치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아주 조심스럽지만 수백명의 희생 속에 철옹성같기만 하던 민심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지방의회와 국회의원들까지 거의 전원이 한나라당 소속이지만 한나라당이 보여준 대응 방식과 모습이 실망스럽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치권이 직접 나선다고 해봐야 사고수습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다분히 이벤트성이었지만 사고 다음날 대구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당 지도부가 모두 옮겨오는 '정성'을 보였으나 정작 한나라당은 대표권한대행과 당직자 일부가 지역을 방문하는데 그쳤다.

물론 자원봉사나 민원처리, 고충상담실 설치 등에 발빠른 행보를 보인 것은 평가할 만하다.

또 당번을 정해 사고수습대책본부에 상주하면서 지원활동을 벌인 것 또한 한나라당이 잘 한 일이다.

정부를 향해 직접적인 사고수습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대구시장이 자당 소속이라는 점 때문에 한나라당은 다소 '어정쩡한' 스탠스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대구시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자칫 이번 참사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결과적으로 더이상 대구시로서는 수습과 대처능력이 없다는 여론에 따라 정부가 직접 개입, 대구시의 위상과 체면은 한없이 구겨졌다.

한나라당도 그 충격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이번 사고 수습과정에서 노무현 정부가 어떤 자세로, 어느 정도로 적극적인 수습 노력을 보여주느냐는 지역 정치권의 판도에도 다소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깃발만 꽂으면 된다는 지역의 한나라당 지배구조에 충격파를 던질 수도 있다.

좌절과 낙담 그리고 허탈감을 넘어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있는 시민들로 하여금 '우리 당=한나라당'이라는 인식에 의문부호를 던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실제로 이번 참사 이후 민주당에서는 대구시의 대처능력 부족과 사고에 대한 책임 등을 물어 대구시장에 대한 공세를 취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대구시장의 책임론을 넘어 중도사퇴 주장까지 나왔다.

보궐선거 이야기도 나왔다.

자연스레 지난해 대구시장 선거에서 조해녕 현 시장과 맞붙었던 이재용 전 남구청장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대선 직전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 참여정부와 지역 민주당에서 역할이 기대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시민 전체가 상주(喪主)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대참사 수습이 급선무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든다는 비판이었다.

여야를 떠나 수습과 대책수립 그리고 시민들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없는 힘까지 짜내야 할 판에 다음 선거를 의식한 행보를 보일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급기야 청와대가 나섰다.

사고수습을 위한 노력봉사 등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야지 절대 정치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참사의 책임과 수습과정에서 몇 차례 여야 격돌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문제는 사고 이후다.

시민들 스스로의 몫이기도 하지만 정치권 역시 대구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하고 대구의 목소리를 어떻게 중앙에 전달, 좌절과 허탈 그리고 상실감을 딛고 일어서는데 기여하느냐에 따라 민심을 얻느냐 잃느냐가 판가름 날 것이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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