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하철... 국가가 맡아야-끝> "시민이 나서자"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도시철도 건설 때 시 경계 안에는 중앙정부가 80%의 예산을 부담한다. 시 경계 바깥은 전액 중앙정부 부담이다.

영국은 보통 정부가 50%를 부담하나 최근 건설된 쥬빌리선은 70%를 분담했다. 열악한 지자체 재정을 감안해 국비를 늘려가는 추세다.

이탈리아도 도시철도 건설 때 차량구입비를 포함해 건설비 전액을 중앙정부가 맡는다. 일본은 실질 국비 보조율이 53.2% 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참사가 난 대구지하철1호선은 총사업비가 1조4천597억원인데 국비는 27%인 3천933억원에 불과하다. 총사업비의 절반인 7천954억원은 빚(차입금)이고 고스란히 대구시의 몫이다.

부산지하철 1호선은 다르다. 총사업비 9천751억원 중 부산시가 부담한 것은 11%인 1천34억원 뿐이다. 빚 7천125억원은 건설교통부 산하의 부산교통공단 빚이다.

부산 1호선은 정부가 89%의 예산을 지원했는데 대구 1호선은 27%만 지원한 셈이다.

대구 2호선과 부산 2호선의 국비와 시비 투입비는 차이가 다소 완화됐으나 큰 맥락은 같다. 대구 2호선에 국비는 48%가 투입됐으나 부산 2호선에는 60%가 투입됐다.

지하철 건설에서 대구는 부산은 물론 유럽과 일본 여러 도시와 비교해도 큰 차별을 받은 셈이다.

그 결과는 감당할 수 없는 부채이다. 대구시의 지난해말 현재 부채는 2조7천억원인데 이중 절반 정도인 1조3천억원이 지하철 부채다.

올해도 1천200억원을 차입할 예정이다. 지하철 빚이 여타 부채를 늘린 측면도 강하다.

부산은 재정력이 훨씬 큼에도 지하철 빚은 3천500억원밖에 안된다. 부산지하철로 인한 3조원(이자 포함)에 이르는 빚은 부산교통공단이 갚아야 할 돈이다.

대구시민들이 도시철도공채를 살 때 부산시민은 시 공채를 사지 않는다. 대신 전 국민이 국채를 사 부산지하철 건설을 돕고 있다.

대구, 광주, 대전, 인천 등지 지방 지하철을 통합해 건설·운영토록 하는 (가칭)한국지하철공사 설립 요구에 정부나 정치권은 지레 겁부터 먹는다. 예산 때문이란다. 한나라당 대구의원들이 지방지하철을 국가 공사화하는 것을 당론으로 채택하라고 요구하자 박희태 대표권한대행도 "예산이 많이 든다"고 했다.

정말 돈이 엄청나게 필요할까. 결론부터 말해 지난해 말 부채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큰 돈이 들지 않는다.

부산교통공단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광주와 대전은 1호선 공정률이 50~60%로 2006년 이후에야 1호선이 완공된다. 한국지하철공사를 연내에 설립하더라도 공사가 당장 관리하는 지방 지하철은 대구와 인천 뿐이다. 대구 1조3천억원과 인천 5천억원을 합해도 1조8천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국회가 추진하는 복안대로라면 한국지하철공사 대전지사는 2006년 설립하면 된다. 광주지사는 2007년 설립된다. 부산지사는 부산교통공단법이 완료되는 2008년 설립된다.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에 필요한 예산은 4~5조원이라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은 잘못이다. 세간에는 터무니없이 10조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결과다.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에 노 대통령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여야 국회의원 52명도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했고, 한나라당은 당론으로 이를 채택할 움직임이다. 이창동 문광부장관, 권기홍 노동부장관, 윤덕홍 교육부장관 등 대구출신 장관들과 주무부서인 최종찬 건교장관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고건 총리는 반대 입장이다. 서울처럼 지자체가 담당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해 "서울 시장 경험 밖에 없어 지방 사정을 잘 모르는 탓"이라고 관측한다. 해법은 총리의 생각을 바꾸도록 하거나 대통령이 나서는 길 뿐이다.

시민들이 나서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거저 얻어지는 떡은 없다. 노 대통령도 "선물은 없다"고 언급한 마당이다.

시민들은 노 대통령에게 한국지하철공사 설립이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부산은 물론 세계 여러도시에 견줘 대구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총리에게도 지방의 사정이 수도권과 다르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시민의 몫이다.

노태우 정권 초기인 지난 87년 부산교통공단을 만들 때 부산 시민들은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부산시민의 폭발력은 고속철 노선변경문제와 관련해서도 최근 나타났다.

대구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 조차 스스럼없이 그렇게 말한다. 과연 대구에 미래가 없을까. 그렇다면 시민들이 나서 대구의 미래를 그리고 만들어야 할 일이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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