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라크전이 끝나면 '세계최대의 유랑민족'쿠르드족들은 또한번 미국의 버림을 받고 주변나라들로부터 탄압을 받는 비극을 되풀이할까.
이라크전이 터지면서 막상 이라크인들보다 더 가슴졸이는 사람들이 이라크 북부 자치지역에 살고있는 쿠르드족이다. 15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이란-이라크 전쟁 중 이란을 도왔다는 구실로 80년대말 후세인 정권은 쿠르드족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해 수만명을 살해했으며 쿠르드 거주지역을 화학무기로 공격해 5천명을 숨지게 했다. 후세인 정권이 또다시 "쿠르드족이 미국과 협력했다"고 주장하며 생화학무기로 공격할 수 있다는 공포가 쿠르드족 사이에 번지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공격 초기 쿠르드족의 대대적인 피난행렬도 이같은 화학무기와 전쟁공포 때문이다.
쿠르드족들에게 이번 전쟁은 지난 걸프전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기회이자 위기다. 후세인정권이 몰락한 후 독립국가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 미국의 공격을 지원하면서도 강대국들의 배반으로 자치권마저 잃지않을까 미국과 터키의 행보가 신경쓰이기 때문이다.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이번 전쟁은 쿠르드족들에겐 분명 희망이다. 쿠르드 지도자들은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의 중심도시인 키르쿠크를 포함하는 지역에 독립국가를 세울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이라크, 이란, 터키, 아르메니아 등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은 대략 2,500만∼3,000여만명으로 이라크에는 360여만명이 살고 있다. 쿠르드족은 이들 지역의 모든 쿠르드족이 협력해 독립국가를 창설한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대다수가 수니파 이슬람교도인 쿠르드족은 고유의 언어를 가졌으면서도 한 번도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했다.
1991년 걸프전 이후에도 독립을 바라며 후세인 정권에 맞서 봉기했다가 진압당했다.
특히 쿠르드족들은 당시 미국의 조지 부시 전대통령이 이라크 국민에게 봉기하도록 부추기고는 막상 쿠르드족 중심으로 반정부 운동이 일어나자 손을 놓아버려 대대적인 유혈 소탕전의 희생이 된 사실을 잊지못한다. 미국은 후세인정권이 무너지고 쿠르드족이 독립하는 걸 바라지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쿠르드족은 현재 이라크 반체제 세력을 주도하면서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걸프전이후 미국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북위 36도 이북)에 기대어 사실상의 자치를 누려왔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번번이 배신을 당해온 쿠르드족들은 이번 전쟁으로 이 자치권마저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도 똑같이 안고있다.
"우리에게 친구는 없다. 오직 산만 있을 뿐이다" 는 쿠르드 속담은 이들이 처한 지정학적, 정치적 현실을 잘 말해준다. 이라크 주변국가들 모두가 이들의 독립을 원치않을 뿐 아니라 미국도 아랍 동맹국들의 입장을 배려할 가능성이 크다.
쿠르드족의 독립국가 수립 목표에 가장 큰 장애는 터키. 미국도 효율적인 이라크 북부지역 공격을 위해서는 터키의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에 터키의 눈치를 봐야 할 형편이다. 쿠르드족이 이라크전 이전부터 미국의 이라크 침공때 터키 군대가 쿠르드족 자치지역으로 들어오면 충돌이 생길 것이라고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때문이다.
터키는 이라크 북부 유전 지대에 대한 미련을 숨기지 않고 있으며 이라크전을 계기로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23일 터키군이 쿠르드족이 장악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지역 민감한 지역으로 밤새 국경을 넘어 진입했다는 보도도 나오고있어 이 지역에서 독립을 이루려는 쿠르드족과 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드미트리 로고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터키의 이라크 북부지역 파병으로 전쟁이 터키로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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