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그 새벽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시골 역전 싸구려 여인숙에서

낡은 카시밀론 이불 밑에 발을 파묻고

밤새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던

20대의 아, 그 바람소리 빗줄기를 다시 안아보고 싶다.

인생에 대하여, 혹은 문학에 대하여

내용조차 불분명하던

거대 담론으로 불을 밝히기라도 할 양이면

다음날 태양은 얼마나 찬란하게 우리를 축복하던가

이미 떠난 기차처럼 청춘은 가고

낯선 플랫폼에 덩그러니 선 나무처럼

아아 나는 오늘밤 슬픈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김용락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일부

젊은 시절 문학은 아침 이슬과 솔개의 하늘과 비 젖은 역사와 사막의 방황과 동의어였다.

그 에너지는 때로 슬프고 암울한 것이었지만 시라는 수평선이 빚어내는 황홀한 설렘과 맞닿아 있었다.

확실하지 않지만 역사적 거대 담론을 말하면서 밤을 지샌 순수한 시절이 비 젖은 기적소리와 함께 그리워지는 것이다.

싸구려 여인숙의 그 깡소주의 시간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정신의 황태자였다.

권기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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