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재자 후세인 싫지만..."

"사담이여 걱정말라. 우리는 당신을 위해 싸운다.

우리는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다".

25일 오전 11시(현지시각) 요르단 암만의 알마하타 거리에 위치한 '이라크 버스정류장'. 이곳에서는 고국을 지키기 위해 이라크로 떠나는 요르단 거주 이라크인들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45인승 버스를 가득 메운 이라크인들은 15세 소년과 20~30대 청년들,중년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성별은 달랐지만 조국을 지키기 위해 출정하는 비장한 결의로 모두가 혼연일체가 된 모습이었다.

"우리는 수천년전부터 빛나는 문명을 일구어 왔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자랑스러워하며 조국에 대한 어떤 침략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

이스라엘과 싸웠던 지난 1967년 3차 중동전쟁에 참전했다는 야세르 파헤드 압바스(56)씨는 "군인인 세 명의 아들이 바그다드 외곽에서 미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면서 "나도 가족들과 함께 싸우기 위해 바그다드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이라크인들은 미군이 이라크 땅을 떠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때 뒷자리에 앉은 한 중년 여인이 "여성들도 함께 싸울 것이다"고 말을 거들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후세인의 초상화가 새겨진 화폐를 들어 올려 기자에게 보여주며 "미국은 하루 이틀만에 이라크가 함락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며 승리를 장담했다.

이들에게 요르단 국경에 설치돼 있는 난민캠프로 대피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그럴 수는 없다"는 이구동성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외국에 있던 이라크인들이 고국에서 싸우기 위해 속속 귀국하고 있다"면서 "가족과 형제들과 함께 싸우다 죽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비장한 어조로 대답했다.

15세의 소년 나쟈크 나쉬호르 역시 "미국은 즉각 군대를 이라크 땅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분개해하면서 자신도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류장 사무소에 따르면 하루 1회 운행하는 바그다드행 버스는 평소 자리의 반도 못 채웠으나 전쟁이 발발하자 지하드(성전)에 출정하는 이라크인들이 급증했다.

지난 23일과 24일 만차 6대가 출발했고 25일에도 만차 2대가 바그다드로 떠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요르단에서 이라크로 돌아간 이라크인들은 5천명이 넘어섰다.

미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시민들의 희생이 속출하고 있는 고국을 지키기 위해 속속 귀국하는 이라크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과연 세계 최강의 군사력만을 믿은 미국이 그들 호언장담대로 이라크를 점령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바그다드로 출발하는 이라크인들에게 "알라의 가호가 있기를!"이라는 인사를 한 뒤 돌아오는 길에 전쟁 발발 전 만났던 한 이라크인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독재자 후세인이 싫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후세인을 제거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사담은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이다".

춘추사 공동특파원·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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