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지원자를 모집하는데 지원할까요?"
3주전쯤 야전공병대에서 군복무중인 막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공병대가 파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잠깐 동안 멍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원자가 많다는 것이다.
아이의 말인즉 대부분의 반응이 "재미 있겠다"고 하더라는 것. 전자게임에 익숙한 오늘의 20대들에게는 신문에 실린, 초점없는 시선으로 이쪽을 보는 미군포로의 모습이나 공갈 젖꼭지를 입에 문 채 처참하게 죽어간 이라크의 젖먹이 사진은 관심이 없고 정밀 유도탄·미사일이 목표물을 공격, 번쩍하는 섬광이 피어오르는 전쟁 실황중계(?)장면을 더 흥미롭게 본다.
1965년 1월 8일, 우리나라 정부는 월남전에 한국군 지원부대 증파를 결정하고 이의 동의요청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미 그 전년 의료진 130명을 파견한 바 있었던 정부는 약 2천명에 달하는 병력을 파견키로 결정했으며 이름하여 '비둘기 부대'가 1965년 2월 25일 월남 전장에 도착했다.
이어 계속된 증파 ….
그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03년 4월 2일, 국군의 이라크전쟁 파병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이달말쯤이면 의료지원단·건설 공병단 666명이 전장을 향해 떠난다고 한다.
지금의 50대는 6·25전쟁의 포화속에서 위험과 굶주림에 떨며 유년기를 보냈다.
청년기에는 1973년 철수 이전까지 월남의 정글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 베트콩과 부비트랩(Boobytrap)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아들이 비록 총을 들고 싸우지 않는 후방 지원부대라고는 하나 미사일보다 무섭다는 사막의 모래 바람과 신경가스 경보에 떨어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
이 무슨 전쟁과의 악연인가.
정부는 전투부대가 아니므로 "위험하지 않다"고 하지만 전쟁의 악몽과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말년을 보내는 수많은 월남 참전 용사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월남 파병 당시는 냉전체제에다 6·25 동란때 유엔 16국이 참전했었다는 '명분'이 그런 대로 존재했으나 지금은 그 '명분'이 없다.
다만 노 대통령이 강조한 '국익과 현실'이 있을 뿐이다.
이'국익과 현실'이 우리 50대를 서글프게 한다.
E H 카아는 '역사는 본질상 변화요, 운동이요, 진보'라고 했다.
우리의 역사는 어떠한가. 반세기가 지났건만 오늘도 여전히 소나기가 쏟아지면 '미국'이라는 거대한 우산속에 한 발 디밀어야 하는 약소국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
모쪼록 전쟁이 빨리 끝나 우리 아들들이 명분없는 전장에서 피해를 입는 일이 없기를 빌고 또 빌 뿐이다.
이충희〈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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