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서.목판에 깃든 국학혼 재조명

'10만개의 목판을 모아 유학의 팔만대장경 조성으로 세계 문화유산을 만들자'.

유교고장인 안동을 비롯, 경북 북부지역을 한국 유학과 국학진흥의 요람으로 만들기 위한 '조용하지만 쉼없는 움직임'이 안동의 한 외진 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안동시내서 20km 떨어진 곳. 안동호를 바라보며 유교거목인 퇴계 이황선생의 도산서원을 지척(1km)에 둔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산 33번지 한국국학진흥원. 현대식 외관과 는 달리 건물안은 수백년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게 한다.

수백년간 문중창고나 벽장속에서 숨어(?) 지내느라 먼지 가득 낀 수천장의 목판들이나 고서적들이 뿜어내는 향내는 방문객들의 발길을 과거로 잠시 되돌린다.

'목숨은 앗아가도 조상 숨결이 깃든 목판과 고서들은 가져갈 수 없다'고 한사코 세상에 드러내기를 거부당했던 각종 자료들.

그러나 지난 2001년10월 진흥원이 개관한 뒤 곳곳의 문중에서 이들 자료들을 맡기기 시작하면서 위탁자료가 쌓였다.

일손부족으로 미처 정리를 끝내지 못해 자료들이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첨단 지하 수장고에 제자리 찾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

현재까지 4만5천점을 넘었다.

안동 등 경북북부 60개 가까운 문중에서 맡긴 것. 고서와 고문서가 각각 1만5천점 넘었고 목판만 1만5천점이 웃돌고 있다.

개관 뒤 불과 1년만에 모여진 것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귀중한 자료가 밀려들지 모른다.

보물 23종 411점과 시.도 유형문화재 12점도 포함돼 있고 국보급 자료도 적잖은 것으로 추정된다.

얼마나 더많은 문화재들이 햇볕을 볼지도 알수 없다.

교육연구부 김종석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연구에 따라 어떤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질지 모르며 이 자료들은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 말했다.

이에 진흥원은 문중 위탁관리 확대와 10만장이 넘는 목판보관을 위해 장판각과 박물관 신축을 추진중이다.

장판각과 박물관을 포함한 종합 유교문화센터가 2005년 개관하면 목판 10만장 확보는 무난할 것으로 보여 진흥원은 세계 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할 계획이다.

자료수집과 정리를 맡은 국학자료부 설석규 수석연구원은 "안동 등 일부지역 문중에서만 위탁한 목판이 1만5천장 넘어 10만장 달성은 문제없을 것"이라 밝혔다.

이미 진흥원은 개관과 함께 퇴계 이황선생 탄생 500주년을 맞아 세계유교문화축제를 치렀고 보관자료들을 활용, 이미 10여권의 관련서적들도 잇따라 선보였다.

이달들어서만 경북북부 45개 문중서 맡긴 각종 문화재목록을 담은 '국학자료 목록집'과 3개문중의 국보급 등 희귀자료들을 모은 '귀중본자료집'도 펴냈다.

진흥원은 또한 올해 국학연구 창간호에 이어 국학교양 총서인 '우리 삶의 근원을 찾아서'와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발간했다.

하반기에도 제3권(사상편)과 4권(국학입문편)을 펴내기로 했다.

그러나 진흥원의 어려움도 적잖다.

외진 곳으로 접근성이 떨어진다.

운영비(13억원)를 재정열악한 경북도와 안동시에서 지원받아 제대로 일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총무과 권대인 과장은 밝혔다.

때문에 권오을 의원 등이 운영비 국비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중이다.

한편 진흥원은 인근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등과 연계, 연간 20만명이 찾는 관광코스로도 부각하고 있다.

지난 11일 회원 40여명과 함께 처음 진흥원을 찾았다는 경기도 남양주시 유도회 회원인 이정범(70) 할아버지는 "볼 것들이 많고 조상숨결을 느끼는 듯하고 조상의 가르침을 되돌아 보게 하는 소중한 장소"라고 했다.

1년3개월째 안내도우미를 맡고 있는 권지연(25)씨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좋으며 외국인들의 방문도 적잖은데 특히 일본인들의 유교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고 전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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