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경기가 이렇게 나쁜 줄 몰랐다니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이 남대문시장 나들이에 나선 것은 분명 '뜻밖'이다.

그러나 그러한 단순 행동은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현주소에 대해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먼저 통화량 조절이 주 임무인 금통위원들이 경기 실태를 시장에서 몸소 느끼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발상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런데도 금통위원들의 시장나들이가 '뉴스'로 취급된 것을 보면 그동안 위원들의 이같은 행위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경찰관이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 수사를 하듯 경제정책을 폈다는 얘기가 된다.

거시경제 지표만 믿고 체감경기를 무시했으니 'IMF 당시보다 더 나쁘다'는 국민의 볼멘 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다.

'아직 괜찮다'며 경기 낙관론을 펴온 정부의 태도를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위원들은 한결같이 "경기가 이렇게 나쁠 줄은 몰랐다"니 상인들로부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경제정책이냐"는 비난을 받을 만도하다.

두말할 나위없이 경제 정책은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세탁소' 경기진단으로 유명하다.

경기가 나빠지면 시민들이 세탁소를 찾지않고 세탁물을 손수 처리한다는데 착안, 이를 정책결정의 기초로 삼는다고 한다.

이자율이나 물가상승률, 통화량 등 거시경제지표는 평균 경기를 말하는 것이지 서민들의 체감 경기와는 동떨어질 때가 많다.

돈을 잘못 풀면 부유층으로 흘러들어 오히려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은 현장감을 잃으면 곧바로 신뢰 추락으로 연결된다.

최근 한국갤럽이 정부의 소비자물가지수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19.2%는 '전혀' 신뢰하지 않으며 56.5%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응답자의 무려 75.7%가 물가지수를 믿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제대로 먹혀들 리 없다.

이제 금통위원들의 시장나들이는 잦아져야한다.

그것이 바로 '정부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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