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달팽이 기어간다

지나는 새가 전해준

저 숲 너머 그리움을 향해

어디쯤 왔을까, 달팽이 기어간다

느린 열정

느린 사랑,

달팽이가 자기 몸 크기만한

방 하나 갖고 있는 건

평생을 가도, 멀고 먼 사랑에 당도하지 못하는

달팽이의 고독을 그가 잘 알기 때문

유하 '느린 달팽이의 사랑'중

조지훈 시인은 포옹을 사랑의 영원한 카타르시스라 했다.

이 끊임없는 카타르시스가 때로 상대의 그림자만 좇는 덧없는 몸짓일 경우가 많다.

함께 있어도 그렇고 떨어져 있으면 더욱 그렇다.

어느 쪽이든 그 정점에 이르기엔 우리 모두 평생 서투르고 느린 달팽이인 것이다.

이 점을 알기 위해서도 반드시 달팽이처럼 고독해야 한다.

그것을 이 시는 가르치고 있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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