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둑질도 엄연한 문화현상?

'도둑질도 문화현상이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에서부터 중세 수도원의 성유물 쟁탈전, 괴도 뤼팽의 활약까지 인류 문명에는 숱한 '도둑질'이 자행됐다.

단순히 '도둑질=범죄'로만 볼 것인가.

도둑연구회가 펴낸 '도둑의 문화사'(이마고 펴냄)는 도둑질을 시대상과 문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파악한 흥미로운 책이다.

도둑연구회는 일본 고치대 명예교수인 와타나베 마사미 등 일본인 교수 5명이 만든 모임이다.

지은이들은 농작물 도둑질이 하나의 민속 행사로 적극 장려됐던 일본 풍속을 다룬 한 논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계기로 '도둑연구회'를 결성하게 됐다고 한다.

각각의 전공인 프랑스 문학, 중국사, 영국 문학, 민속학, 프랑스 중세사를 적극 활용해 '도둑 행위'로부터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끌어내고 있다.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는 신과 자연에 대한 반역과 도전을 통해 진정한 개체로 자리잡는 인간의 화신이다.

문화란 본질적으로 모방, 다시 말하면 훔치는 행위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먼저 의적, 여장 도적, 괴도 등 도둑의 종류를 설명하고, 그 성격을 개괄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도둑들은 조직성과 소속성 등을 통해 나름대로 사회를 형성했을 뿐 아니라 도둑을 엄연한 직업으로 여겼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시절에는 흉기를 들고 서성이는 도둑은 가장 낮은 도둑으로 경멸받았다.

이에 비해 인간을 해치지 않고 기술이 뛰어난 도둑은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교양 시민으로 생각했다.

도둑질과 관련된 각 국의 풍습도 재미있다.

일본에서는 '음력 보름은 도둑의 신'이라는 생각으로 그 날 하루에 한해 농작물, 특히 고구마를 훔쳐도 되는 관습이 있었다.

한편 중세에는 유골이나 유물 절도가 성행했다.

프랑스의 생드니 수도원에는 샤를 5세의 대퇴골, 샤를 6세의 경골, 루이 12세의 늑골 등이 보관돼 있다.

영험을 맹신한 많은 이들이 유해와 성유물을 차지하기 위해 훔쳐오고, 또 다시 도둑을 맞는 역사가 되풀이 됐다.

지은이들은 이 책을 통해 소유권이라는 관념적인 제도가 우리가 믿고 있는 것만큼 안전한 것인가 라고 질문하고 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취약한 허구는 아닐까. 도둑질을 통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까지 확장시키는 지은이들의 상상력이 재기발랄하다.

송현아 옮김. 269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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