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불안을 이기려면

요즘 대구·경북 사람으로서 느끼는 주된 정서는 불안이다.

불안은 여러 얼굴을 가졌다.

집값이 오른다하고, 부동산 버블(거품)이 꺼지면 위기가 올 거라고도 한다.

증시가 움직일 거라 하고 긴 불경기가 올 거라고도 한다.

지금도 지구 도처에서 억압과 학살의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우리의 평화는 언제라도 위태로울 수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신새벽까지 과외 공부에 시달리며 밤잠 못 잔 충혈된 눈으로 소수점 이하의 성적 차이에 신경을 곤두세워야하고, 불안한 부모들은 이제 막 물오른 청년기를 앞둔 아이들에게 야심은 접고 취직 걱정 안 할 수 있는 의과대학 가라고 회유한다.

일본은 자위대의 허울마저 벗어 던지고 이제는 군대를 갖겠다고 공언한다.

그 앞에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동과 서로 반목하고, 노동자 대중의 아우성 뒤로는 언뜻언뜻 살기에 찬 적개심과 기존 가치에 대한 파괴의 충동이 엿보이며, 기득권 층의 절제 안된 탐욕과 사심이 대립하고 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미국에 의한 세계 질서, 소위 '세계화' 속에서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이라는 '신념의 윤리'는 '생존과 번영'을 위한 '책임의 윤리'와 충돌하여 대통령은 '쉬운 사람(easy man)'이 되었다.

불안을 이기기 위하여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을 동원한다.

'제로섬 게임'의 사고방식으로, 내가 행복하자면 다른 사람이 괴로워야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불안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 무자비하고 냉혹한 것이 합리화 된다

그들은 불안 때문에 그렇게 모아들인 재물의 성을 쌓고는 그 성을 지키기 위해 인생을 소모하고 낭비한다.

어떤 이들은 책임을 안져도 되는 어린아이 같은 태도로 살면서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의지처로 설정하고 매달린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식이다.

열살 미만의 어린아이라면 해맑은 아름다운 소망이겠지만 성년이 된 사람이라면 그의 의존 욕구는 어머니와 누나의 희생을 요하는 착취가 된다.

이 두 가지 태도가 서로 부딪히면 증오와 분노가 살기를 띠고 나타나게 된다.

불안은 마음을 뒤흔드는 근원적인 정서다.

불안에 휩싸일 때는 현실을 명확히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도처에 불안을 일으키는 요소들로 넘쳐난다.

불안으로부터의 도피나 불안을 못이긴 폭발이 아닌 불안의 해결을 위해, 세상과 현실이 불안할수록 더 많이 애를 써야 한다.

교회와 사찰과 무슨무슨 수련원들과 이런 것들이 저렇게 많은 것은 불안을 극복하고 회복하려는 힘이 우리 가운데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이면서 또한 불안 극복의 길이 충분히 시원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기적은 멀지 않다.

눈 앞의 나뭇잎 하나 풀 한 포기가 모두 기적이며, 발 딛고 지구 위를 살아가는 것이 곧 기적이다.

눈만 뜨면 보이는 기적 속에 살면서도 우리는 기적을 찾고 있다.

생명은 기적이면서 우리는 생명이기 때문에 불안하다.

모든 생명체의 확실한 궁극적 미래는 죽음이며 죽음과 소멸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소외를 두려워한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하기를 도전이 있고 그 도전에 적절한 응전을 할 때 그 문화가 발전한다고 했다.

세계가 그렇고 우리 나라가 그렇지만 요즘 대구·경북은 특히, 상대적으로 땅값 집값이 안 오르고 지역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는 등, 여러 얼굴의 불안을 겪고 있다.

그러나 대구 경북은 오랜 역사를 통해 증명된 건강한 자부심, 뚝심을 가지고 있다.

건강한 응전이 반드시 일어나 이 시기의 불안을 해결하는 빛이 될 것이다.

최태진〈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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