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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포로 박찬동씨-"아직도 포성이 귓전을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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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6·25가 돌아오면 처절했던 전쟁터의 포성이 귓전을 맴도는 사람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수도사단 맹호부대에서 최전방 고지 전투 중 중공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박찬동(73·고령군 고령읍 장기리)씨.

그는 인생을 두번 사는 셈이다.

집으로 전사 통지서와 함께 유골이 돌아왔고, 위로금 50만원까지 지급됐으니 곱다시 죽은 목숨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포로교환으로 귀환하자 마을잔치까지 벌어져 화제가 됐던 노병이다·.

박씨가 입대한 것은 1951년 2월. 아내 김학수씨와 결혼한 뒤 한달만이었다.

제주도에서 96일간 혹독한 훈련을 거쳐 가장 군기가 엄했던 수도사단의 26연대 5중대 1소대로 배치됐다.

전방 수도고지(금성지구)전투에 투입돼 한달째 공방전을 벌이던 그의 부대는 같은해 9월 중공군의 빗발치는 포 공격으로 참호 속에 있던 36명의 소대원중 34명이 몰사하고 박씨와 김해 출신의 한 병사만 살아남았다.

두사람은 중공군의 포로가 됐고, 그때 부대에서는 소대원이 모두 죽은 것으로 판단해 다른 시신을 박씨의 유골이라며 전사통지서와 함께 고향으로 보냈던 것. 온가족의 통곡소리가 며칠간이나 계속됐지만 아내 김씨는 끝내 남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유골을 고령읍 봉덕골 사찰(현재의 관음사)로 보냈다고 한다.

황해도 수황광산 포로수용소와 평양 연하리 탄광 인근 포로수용소·압록강변 만포수용소 등을 전전하며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생사를 헤매던 박씨는 포로교환협정으로 개성~문산~인천을 거쳐 꿈에도 그리던 남녘땅을 밟게 됐다.

거제도 옆 용균도에서 2개월간 사상교육과 심사를 받은 후 20일간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오자 형인 박순석씨는 전사위로금으로 구입한 논 300평을 육군본부에 전부 반납할 만큼 기뻐했다.

그는 피비린내나는 전장에서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처절한 전투를 벌였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월 5만원의 참전 수당만 받고 있을 뿐 그 흔한 훈장이나 포상 하나 없이 인생의 끝자락에 서있다.

동료들이 모두 죽어 입증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5년여간의 긴 군복무를 마치고 1956년 6월 21일 제대할 때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살았는지 꿈만 같았다"는 박씨는 "이제는 잊혀진 전쟁이지만 젊은 한때를 송두리째 전쟁터에 내던졌던 그때의 아픔과 고통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고령·김인탁기자 ki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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