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의 조형물-대형 추상작품 수두룩

서울은 대구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삭막한 도심을 예술의 향기가 흐르는 곳으로 바꿔주는 뛰어난 조형물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틀동안의 발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느낄 정도로 볼 만한 작품이 많았다.

서울의 이름난 환경조형물을 찾아 그 실태를 알아봤다.

최근들어 서울의 환경조형물은 '공세적인' 경향이 뚜렷했다.

회사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것은 물론이고, 건축주의 미술감각을 과시하려는 듯 규모가 컸고 작품의 질도 높았다.

조형물 전문가 윤태건(36.카이스갤러리 디렉터)씨는 "좌대에 놓여있는 전통적인 쇠, 돌 조각에서 탈피, 주변 공간과의 관계 등을 고려한 실험적인 작품이 많아지는 시기는 90년대 후반쯤부터"라면서 "시민들의 이해도, 건축주의 마인드 등이 높아지면서 추상적인 대형 작품들이 대거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추상적인 환경조형물의 효시는 1997년 포스코 사옥 앞에 있는 '꽃이 피는 구조물-아마벨'이다.

미니멀 아트의 세계적인 거장 프랭크 스텔라(67.미국)가 만들었고, 철거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찌그러진 쇠조각을 이리저리 뭉쳐 놓은 것이지만, 뒤편의 매끈한 빌딩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테헤란로 양편에 서있는 수많은 빌딩의 조형물중 '아마벨'만큼 자신의 회사(철강)이미지를 잘 살려낸 작품도 드물었다.

'아마벨'의 제작비가 3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볼만한 작품은 그만큼 투자가 필요했다.

종로구 서린동에 있는 SK본사사옥에도 인상적인 작품이 많았다.

요즘 서울의 경향을 보여주듯, 조형물을 건물 외부가 아니라 로비, 엘리베이터, 복도 등 내부에 설치한게 특징. 이동통신회사의 이미지에 걸맞게 비디오 아트 작품이 대다수였다.

로비에는 대구에서 활동한 작고작가 박현기(1942~2000)의 작품 '현현(顯現)'과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TV첼로(1999년작)'가 눈길을 끌었다.

백남준의 작품은 서울에 워낙 많이 깔려 다소 식상한 듯 했지만, 시골 평상마루같은 큼지막한 사각형 돌판과 그 앞에 남성 심벌모양의 돌덩어리, 그위에 연못의 그림자 형상의 비디오작업으로 이뤄진 박현기의 작품이 무척 반가웠다.

'현현'은 음양오행사상을 도입, 연못 속에 비치는 선돌의 그림자를 표현한 작품이다.

엘리베이터 위쪽에 붙어있는 김영란과 김해민의 비디오 설치작업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명물이었다.

중구 정동의 흥국생명빌딩은 저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 앞에 서있는 22m높이의 거대한 조형물 '해머링 맨(Hammering man.2002년)' 때문이다.

실루엣이 뚜렷한 검은색 강철로 이뤄진 이 작품은 모터를 이용, 쉼없이 망치질을 하는 형태인데 마치 소인국에 온 걸리버 같은 느낌을 준다.

'컴퓨터시대에 일하는 육체노동자'를 표현한 조나단 브로프스키(61)의 '해머링 맨'은 베를린 바젤 시애틀 등에 이은 일곱번째 작품이다.

여의도를 둘러보면 여러 건물에 멋진 조형물이 즐비하다.

한국산업은행 본점 뒤편에 있는 정보원(53)의 '무제(2001년)', 63빌딩앞에 서있는 리차드 리폴드의 '한국의 정신(1985년)' 등도 괜찮은 볼거리였지만, 일신빌딩 앞의 마우로 스타치올리의 '일신여의도91'이 가장 좋았다.

17m 길이에 카누를 세워놓은 듯, 칼을 날카롭게 갈아놓은 듯한 이 작품은 누구 하나 추상적인 조형물에 관심을 두지 않던 시기(1991년)에 만들어졌다.

회사 관계자는 "열렬한 미술애호가인 김영호(59)일신방직 회장의 발상 때문에 서울의 명소가 됐다"고 말했다.

호암갤러리에서 조형물을 담당했던 박동기(37.한기숙갤러리 실장)씨는 "대구 조형물도 멀지않아 젊은 작가, 비디오.영상작품, 실내조각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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