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철도노조, 파업 나흘만에 전격 철회

50년이 넘는 긴 역사에다 공공부문 노조 중에서도 가장 투쟁력 높다고 자부해 온 철도노조가 1일 '백기'를 들었다.

요구했던 것을 얻어내지 못한 채 사흘 넘게 끌어온 파업을 접은 것.

반면 노사정책 무원칙 정부라는 핀잔을 들었던 참여정부는 이번에 '철도대첩'이라 불릴 만한 전과를 올린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철도파업 사태를 전기로 노사관계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이 앞으로 상당폭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파업 왜 끝냈을까?

국회가 30일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철도 구조개혁 법안인 '철도산업발전 기본법'과 '한국철도 시설공단법'을 통과시키자 철도노조는 파업 동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철도청을 운영 담당 공사와 시설관리 담당 공단으로 쪼개 개편하는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철도노조가 요구해 온 고속철도 건설부채 11조2천억원 정부 부담, 개량.복선화 작업 시설공단 이전 반대 등 요구가 물거품이 된 것. 노조는 법안 통과로 정부가 더 이상 노조에 내 줄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노조의 파업을 접게 한 또 하나의 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정부의 강경 대응이다.

정부는 파업 첫날이던 지난달 28일부터 노조원 농성장에 경찰력을 투입했는가 하면 이어서 지도부 사법처리 절차에 들어갔다.

한 술 더 떠 노조위원장 등 파업 주동자 121명을 30일 직위해제하고, 끝까지 복귀 않으면 파면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신규 인력채용 계획을 세우고 파업 노조원에 대한 민사소송 계획까지 흘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노조의 당초 판단과는 다른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상당수 노조원들은 정부가 노동계 하투를 앞두고 함부로 공권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참여정부 출범 후 첫 공권력 투입이어서 기습적인 면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파업 사흘째 되던 30일 오후 영주 등 일부 노조지부의 이탈 소식이 전해졌고 1일 새벽 0시쯤 파업 철회를 위한 파업찬반 투표 실시 방침이 전해졌다.

◇정부, 태도를 바꾸나?

정부는 철도파업 돌입 전부터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의 본격적인 하투를 앞두고 줄파업 신호탄이 될 철도노조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올 임단협 투쟁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닥친 때문. 더욱이 사용자와의 협상을 뛰어 넘어 정부와 맞서겠다는 노조의 의지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꺾어야 한다는 부담도 참여정부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한 이유로 분석된다.

여론과 법적 판단은 정부를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있게 한 또 다른 동력이 됐던 것으로 풀이된다.

조정신청과 파업 투표를 거치지 않은 절차적 불법성, 노사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는 구조조정 문제가 파업의 핵심 이슈가 됐다는 점 등때문에 파업이 불법인 만큼 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셈이었다.

어쨌든 참여정부는 지금까지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힘'으로 철도노조를 '제압'했다.

이는 앞으로 노동정책에서 수세적 입장을 탈피, 공세로 나갈 가능성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아직은 속단키 어렵다는 반론도 없는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가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란 의견이 적잖은 것. 역내 대학 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의 노사정책이 친노(親勞) 쪽으로 흘렀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며 "이는 참여정부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며 향후 정책 기조에서 그들을 배제한 채 공격적으로 나갈 수만은 없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재도 정부는 합법적 파업의 유일한 해결책은 대화와 타협이라고 강조하며 노조에 유화적인 태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철도파업 사태에서 보여줬던 강성 모습을 다시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될 수 있는 또하나의 근거인 셈이다.

◇하투(夏鬪)는 어떻게 될까?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금속연맹, 화학섬유연맹 등이 2일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투가 피크를 향해 치닫는 과정이 시작된 것.

그러나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올 하투 전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일 파업예정 노조들조차 정부의 강성 태도를 의식함으로써 투쟁력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특히 임금 및 단체협약 관련 교섭이 결렬되지 않았는데도 노조들이 총파업에 참가하는 사례는 많이 줄어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절차적 불법에 조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국내 최대인 현대자동차 노조가 강경 투쟁보다는 협상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도 올 하투 분위기를 예상보다 가라앉게 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나라 하투 분위기는 대형 노조에 좌우돼 온 것이 지금까지의 흐름이었다.

철도노조가 공공 부문이었던 만큼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역시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업권까지 제한돼 있어 실제로 노동위 파업권 제한 결정이 내려지면 예년처럼 정면 돌파를 노리기는 쉽잖을 전망인 것. 보건의료 노조는 이달 중순부터로 예정된 쟁의에 들어가더라도 최대한 절차적 합법성을 지키는데 유의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약속을 어기고 있다며 다음주 다시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 단체행동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부가 철도에서와 같은 강경대응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구노동청 관계자는 "철도노조 파업 철회로 올 하투는 일단 큰 고비를 넘어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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