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의 당당한 주역으로 활약한 대구·경북이 21세기의 개막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한 발 밀려나 있다.
아웃사이더가 됐다.
남은 것은 스스로의 역량을 강화하고 자생력을 키우는 일밖에 없다.
매일신문은 창간 57주년을 맞아 대구·경북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지역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는 의미에서 '젊은 대구·경북, 다시 세계 속으로'라는 주제로 분야별 지역 혁신의 방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1991년 대구의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가 전국 광역지자체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한 이후 대구는 경제 '회복'을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총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지금도 대구는 1인당 GRDP 전국 '꼴찌'라는 오명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대구는 대기업 유치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이미 실패한 삼상상용차의 사례와 지난 달 12일 대기업 유치활동 지원 요청에 대해 냉정하게 거절한 노무현 대통령의 반응에서 보았듯이 정치논리로 경제를 풀 수는 없었다.
기업이 대구를 외면하는 것은 대구의 총체적 여건이 기업하기에 부적합한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잘못된 정책이었던 만큼 그 결과 역시 신통치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장우(한국전략경영학회장) 경북대 교수는 "수많은 기업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기술을 발전시키는 첨단 지식산업에서는 한두 개 대기업의 유치만으로 경쟁력 있는 산업클러스터를 창출할 수 없다"며 "대표적 전략산업은 지역의 특화된 자원기반 위에서 수많은 혁신활동의 결과 떠오를 가능성이 많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대구경제에 대한 근본적 처방을 내리기 위해서는 경제현실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13년째 1인당 GRDP 최하위를 기록한 대구시민의 삶의 질은 전국 하위권 수준일까. 아니다.
2000년 1인당 민간소비지출을 보면, 대구는 687만9천원으로 부산 729만원보다는 낮지만 인천(690만원) 대전(681만7천원) 울산(692만6천원)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소득세 납부 및 저축 수준은 각각 3~5위 및 5위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대구시민의 '소득'은 대체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선 경북의 생산이 대구시민의 소득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대구와 경북의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동일 경제권이면서도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협조가 부족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수 개의 광역지자체가 동시에 참여하는 새로운 개념의 지역산업 진흥계획 추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윤영선 산자부 산업입지환경과장의 언급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경북의 산업이 미래에도 현재보다 더 활기차게 돌아갈 수 있다면 대구경북 경제위기론은 설득력이 약해진다.
구미전자공단과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포항철강공단은 전혀 "걱정없다"며 자신하는 일부 인사들도 있다.
사실 구미공단은 올해 1/4분기에만 123억 달러(약 14조7천억원)의 수출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고, 포항철강공단도 중국특수 등에 힘입어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의 최신설비는 광양에 위치에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포항철강공단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데다 구미공단의 자랑거리인 반도체, 첨단디스플레이 등의 차세대 공장들이 수도권과 충청권으로 옮겨간 사실을 목격하고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지역민은 없을 것이다.
LG필립스는 경기도 파주에 12조원을 투자해 8세대 LCD 생산라인을 건설하기로 했고, 삼성은 20조원이 넘는 엄청난 투자를 천안·아산 지역이 쏟아붓는 구체적 계획을 발표했다.
포항과 구미, 경북과 대구는 향후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대구경북 지역에 상당한 산업기반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비전'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박용규(삼성경제연구원) 박사는 "이미 사업기반을 다진 구미가 아닌 파주에 아시아 최대의 LCD기지를 짓기로 한 가장 큰 이유로 우수인재 확보를 들고 있다"며 "R&D(연구개발) 인프라의 60%, 대학 우수연구센터의 55%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지방이 자생적 신산업을 창출하기란 힘들다"고 말했다.
지방대학의 R&D 역량 강화와 인재육성으로 지역혁신체제를 구축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기는 마찬가지다.
박종근 의원(한나라)은 "지역대학에서 배출된 우수인재들이 일자리가 없어 수도권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지방대학 육성정책을 취하더라도 지방대학과 지방의 쇠퇴는 막을 수 없다"며 "우수한 인재를 모아 지역혁신과 신산업 창출의 중심역할을 담당할 연구기관의 설립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도 "지역연구센터, 지역기술혁신센터, 테크노파크 등 각종 지방의 사업들이 국가 전반적인 과학기술 투자에 비해 아주 미약한 상태로 진행됐을 뿐아니라 부처별로 추진되면서 중복투자, 사업간 부조화 등을 초래해 취약한 지방의 혁신역량을 분열시킨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임 교수는 따라서 "지역출신 우수인재와 세계적 고급두뇌를 모아 지역산업혁신과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중추적 연구기관을 설립해 지방대학 및 기존의 지역혁신 기구와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운영시스템을 갖춘다면 '산업 활성화' '지방대학 육성''지역사회 발전'의 선순환 메커니즘을 주도할 수 있는 진정한 '성장엔진'을 갖추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이공래(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는 "지식경제시대의 산업 경쟁력은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와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문화·교육적 환경으로부터 나온다"며 "대구경북이 침체의 사슬을 끊고 자생적 발전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