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 대가야-철제작 시점은

대가야가 철기를 본격 생산한 시점은 언제일까.

중국으로부터 한반도에 철기가 도입된 시기는 기원전 200~100년 무렵. 학계는 고조선이 철기를 받아들인 뒤 마지막 왕조, 위만조선은 직접 제철기술을 익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위만조선은 기원전 108년 중국 한나라에 멸망하면서 상당수 세력이 육로나 해로로 남하했고, 이미 소국의 힘을 발휘하고 있던 마한보다 변·진한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변한 소국들은 풍부한 철산지를 배경으로 위만조선 유이민 세력의 제철기술을 접목, 철생산에 본격 나선 것으로 보인다.

200년대 중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조에는 '나라에서 철이 나오는데 한(韓), 예(濊), 왜(倭) 모두 사갔다.

시장에서는 철을 중국 화폐처럼 사용했고, 2군(낙랑·대방군)에도 공급했다'고 적고 있다.

변한지역이 한반도의 철 생산·공급의 중심지였다고 시사하고 있다.

학계는 초창기 가야 맹주국이던 김해세력(금관가야)이 유리한 해양조건을 근거로 철 생산과 교역을 주도했다는데는 별 이견이 없다.

그러나 대가야의 제철기술 도입과 관련, 한쪽에서는 400년 고구려 남정으로 쇠퇴한 금관가야 세력이 바다건너 왜와 내륙으로 흩어지는 과정에서 유입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쪽에서는 대가야 전신, 변한소국 단계의 나무널무덤에서 철기가 일부 나오고 300년대 후반에 다량 출토된 점에 비춰 300년대에 이미 제철기술을 보유했다고 보고 있다.

이남규 한신대(국사학) 교수는 "400년대 접어들면서 제철 기술력과 교역 거점이 김해에서 고령으로 바뀌었다"고 했고, 손명조 공주박물관장은 "철광석에서 쇠를 뽑아내는 제련기술은 쉽게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정 기술자집단의 편입이 대가야 제철기술력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태식 홍익대(역사교육학) 교수도 "철 생산기술의 전파는 금관가야 쇠퇴과정에서 기술자들의 분산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노중국 계명대(사학) 교수는 "대가야 전신인 반로국에 철기가 도입된 이후 가라국으로 발전할 때까지 200년 가량 기술력이 공백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세기 대구한의대(역사관광학) 교수는 "대가야는 변한 소국때부터 김해 구야국과 교류하면서 제철의 노하우를 쌓았을 것"이라며 "철기가 변한 소국당시 무덤에서 일부 나오고 300년대 말 다량 출토된 것으로 봐 늦어도 300년대에는 제철기술을 확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한을 모태로한 대가야가 철기를 본격 생산한 시점은 이처럼 300년대와 400년대로 견해가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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