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지난 10일 오후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이재송(44.회사원)씨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있었다.
큰 맘 먹고 두 딸과 함께 참가를 신청한 장승 깎기 행사. 익숙지 않은 솜씨지만 온 가족이 함께 뭔가에 매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듯 쉴 새 없이 망치와 끌을 놀렸다.
"아빠, 이빨을 드라큘라처럼 무섭게 다듬지 마세요. 엄마는 혓바닥을 너무 짧게 하지 말고요. 다미는 머리를 잘 다듬어야 해". 감독격인 큰딸 빛나(정화중 3년)양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 영구 이빨처럼 뭉툭하게 깎을 테니 걱정 마라. 이제 어느 정도 형태가 잡혔지 않니". 아버지는 딸의 잔소리가 싫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30℃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이씨 가족은 두시간여 함께 땀을 흘렸다.
이씨는 "평소 애들과 얘기할 시간도 별로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라고 했다.
막내 다미양은 "장승 아저씨, 우리 가족 잘 지켜 주세요"라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장면이었다.
그 옆에서 솟대를 만드는 윤명훈(44)씨 가족도 내내 떠들썩했다.
벤처기업에 다니느라 여름 휴가도 없이 바쁘게 지낸 윤씨. 늘상 딸들에게 미안했지만 오늘만은 시름을 덜었다는 얼굴이었다.
"아빠, 이 오리는 다이어트를 해야 겠어요. 너무 뚱뚱해요". 큰딸 지수(12)가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자 얼른 손길을 내민다.
"그래 배를 좀 깎아주마. 우리 둘째 오리는 구멍을 뚫어줘야겠네". 둘째 지원(9)이가 퀴즈를 냈다.
"아빠, 오리 두 마리면 얼마게요?", "글쎄다.
한 마리에 얼만데?", "에이, 그것도 몰라요? 오리가 둘이면 십리잖아요". 모두의 웃음보가 터졌다.
곁에 있던 엄마가 한 술 더 뜬다.
"우리 가족 오리 모두 합하면 여덟 마리니 모두 사십리네". 아이들은 웃느라 배를 움켜쥐었다.
윤씨 가족은 천연염색 행사에도 참가했다.
치자, 소목 등 천연 염료를 이용해 다양한 색깔의 문양으로 천을 만들었다.
윤씨는 "오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며 "방학 끝나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했다.
장승 깎기를 도와주던 봉석현(48.남장 예술원)씨는 "가족들이 합심해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너무 보기 좋았다"며 "장승을 깎는 데는 아버지의 힘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 아이들이 모처럼 느낀 아버지의 존재에 더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행사를 주관한 청소년문화센터 '우리세상'의 진은주 간사도 "비록 많은 인원이 참가하진 않았지만 함께 땀을 흘린 가족들은 서로의 간극이 좁아진 것 같아 보람 있었다"고 했다.
자녀들은 자라면서 부모와 점점 멀어져 간다고 한다.
특히 힘겨운 세상살이를 하는 아버지들의 입장에선 갈수록 자녀들의 얼굴이 서먹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라는 게 청소년단체 관계자들의 얘기다.
부단히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 진은주 간사는 "오늘처럼 작은 행사라도 함께 참가해 과정을 공유한다면 부모 자식 간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히는 좋은 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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