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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교육섹션 솜씨 키우기-시 길라잡이

'대한에 학문 있는 정치가가 몇이 없으나 그 중에 마음이 발라 나라를 자기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혹시 있는 것을 알리라. 몇 달 전에 모씨가 외부대신으로 있을 때에 어떤 외국 사신 하나가 대한 정부에 대하여 무슨 권리를 자기 나라 사람에게 주라고 하여 그때...모씨가 혼자 인민을 위하여 못 주겠다고 정정당당히 정부에서 말한 까닭에 그 외국 공사가 모씨를 좋아 아니 하여 매우 불편한 일이 많이 있었으나 모씨가 죽는 것을 무서워 아니 하고 자기 생각에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을 기어이 할 양으로...'

1897년 11월11일자 논설의 일부입니다.

이 글에서 '나라와 민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외세에 저항한' 모씨가 바로 매국노 이완용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그럴 리가 없다'거나 '그건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상당부분 학교 교육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는 국사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인식적 상상력을 작동시켜 역사의식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단편적 사실만을 암기하도록 강요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식기반사회에서 모든 교육의 이정표는 창의력이 되어야 하며, 학교 교육의 내용 또한 창의력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상상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제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관습적 사고를 뛰어넘어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상상력이 바로 생존 자체를 위한 전략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이지요. 이 상상력의 세련을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문학교육입니다.

시와 동화 읽기 교육입니다.

최근 프랑스가 초등학교에서 문학교육을 강화하여 매일 두 시간 이상 문학작품을 읽고 감상을 쓰도록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는 하루종일 색칠공부 책을 칠한다/나비도 있고 꽃도 있고 구름도 있고/강물도 있다.

/아이는 금 밖으로 자신의 색칠이 나갈까 봐 두려워한다//누가 그 두려움을 가르쳤을까?/금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그는 어떻게 알았을까?/나비도 꽃도 구름도 강물도/모두 색칠하는 선에 갇혀 있다//엄마, 엄마, 크레파스가 금 밖으로/나가면 안되지? 그렇지?/아이의 상냥한 눈동자엔 겁이 흐른다/온순하고 우아한 나의 아이/책머리의 지시대로 종일 금 안에서만 칠한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에 대해 매우 인색함을 안타까워하는 김승희의 시선에서 오늘의 우리 교실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김동국(아동문학가.문성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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