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황 여파 자살 급증...지난달 대구 59건

경제 불황의 여파로 생활고 등을 비관한 자살이 잇따르면서 이를 막기 위한 사회적 보호 장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4일 일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김모(37)씨의 경우 자살을 택한 이유가 사업 실패 때문이었다.

그는 남겨진 자식들에게 쓴 유서를 통해 '3개월 내에 상속 포기 각서를 꼭 써야 한다'며 그동안 지긋지긋한 '빚'에 시달려 온 고통을 대신 토로했다.

이날 오전 목이 맨 채 발견된 이모(34)씨도 편의점 운영 실패로 인한 빚 독촉으로 괴로워하다 한달전 옆방에 세들어 있던 30대 실직자가 자살한 뒤 '자살 충동'을 가족들에게 이야기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선 9일에는 회사 부도 위기에 놓인 김모(46)씨가 이를 비관해 달서구 모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으며 8일에는 빚독촉에 시달리던 최모(47)씨와 실직자 정모(30)씨가 달서구와 남구 모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등 이날 하루에만 3건의 자살 사고가 발생했다.

또 7일에는 과일 행상을 하던 주모(42)씨와 모 회사 직원인 김모(31)씨가 카드빚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등 2건의 자살 사건이 잇따랐다.

지난 한달간 대구지역에서만 발생한 자살 건수는 모두 59건. 경찰은 이중 절반 이상이 생활고를 비관하거나 이로 인한 우울증이 동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호철 신경정신 병원장은 "본격적인 경쟁사회로 접어들면서 자살의사를 보이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지금까지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부부간의 갈등이나 가정불화 등 인간관계에 의한 자살이 많았으나 최근 들어 경제난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조희근 대구대 가정복지학과 교수는 "이미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5.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5위를 기록하고 있다"며 "자살 충동을 이겨낼 수 있는 가치관의 확립과 사회적 교육 등 기본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의 자살방지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한해 발생한 전체 자살 건수는 1만3천55건으로 지난 2000년 1만1천794건, 2001년 1만2천277건 등에 비해 해마다 증가 추세에 있으며 대구 지역의 경우도 지난해 546건이 발생해 2001년 487건에 비해 12%가 증가했다.

홍덕률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5년간 정부예산 증가율보다 2.5배나 빠른 속도로 복지예산이 증가됐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빈곤층에 대한 생활실태조사도 하지 않고 있으며 관리 시스템도 전무한 실정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들에 대한 별도의 복지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사회적인 배려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최창희기자 c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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