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헬스-계절성 정동장애

쌀쌀한 바람, 거리엔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

스산한 거리 풍경처럼 이맘때면 남몰래 울적한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주부 이모(37.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는 최근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무력감에 빠졌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고, 남편이 귀가를 해도 물끄러미 바라볼 뿐 반갑게 맞이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

잠도 오지 않고 정신도 멍해진다.

낮에 혼자 있으면 창 밖으로 지나가는 차들과 행인들을 멍하니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가을 우울증은 계절성 정동장애

사람의 기분 상태는 계절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가 있다.

계절에 따라 기분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나는 경우를 의학적으로는 '계절성 정동장애'(정동이란 기분을 뜻한다)라고 한다.

흔히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말한다

계절성 정동장애란 몇 번의 계절에 걸쳐서 규칙적으로 기분의 변화가 되풀이되는 경우이다.

여기엔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가장 흔한 것은 겨울형 계절성 정동장애. 이는 가을이 되면 우울해지기 시작해서 겨울이 지날 때까지 우울하다가 봄과 여름이 되면 우울증이 없어진다.

겨울형에 비해 드물지만 여름형 계절성 정동장애도 있다.

여름에 주로 우울해졌다가 가을과 겨울이 되면 오히려 우울증이 없어지는 경우이다.

계절성 우울증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우울 증상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우울한 시기에는 식욕이 오히려 증가하고 잠이 많아지며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이 생겨 밥이나 밀가루 음식을 많이 찾게 된다.

당연히 체중도 늘어난다.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며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개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들이다

병적이지는 않지만 정상인에게도 계절에 따른 기분의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

최근 미국 동북부의 한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겨울에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고됐다.

전체 참가자의 5% 이상은 계절성 정동장애의 임상적 진단에 해당됐다.

연구에 따르면 계절성 정동장애는 전체 성인의 4~12%에서 나타난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계절성 정동장애 환자들의 70~80%는 여자이며, 가장 흔히 발병하는 연령층은 30대이다.

▲가을엔 왜 우울한가

계절에 따라 기분 상태가 변화를 보이는 것에 대해선 몇 가지 가설이 있다.

가장 가능성이 있는 요인은 일조량이다.

줄어든 일조량이 인체 내에 변화를 줘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것.

겨울형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위적으로 강한 빛을 쪼이면 80%는 상당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치료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계절과 무관한 일반 우울증 환자들에겐 빛 치료가 효과적이지 않다.

빛 치료가 겨울형 우울증에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우울증의 원인이 멜라토닌 분비의 이상 또는 멜라토닌의 비정상적 반응 때문이라는 주장과 관련있다.

멜라토닌은 수면-각성 주기의 조절에 일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햇빛은 인체 내 멜라토닌 생성을 억제해 수면보다는 각성 상태를 유지하도록 도움을 준다.

따라서 햇빛처럼 강렬한 조명(보통 1만 럭스 이상)을 쪼이게 되면 멜라토닌에 의한 과수면, 피곤함, 우울증 등이 호전된다.

밝은 빛에 노출되면 세로토닌의 생성이 증가되기도 한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생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사용되는 우울증 치료 약물들은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쨌든 밝은 빛은 겨울형 우울증에 좋은 것만은 분명하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도움말:김희철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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