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단역배우 주목하기

명절 즈음엔 대작영화가 많아 즐겁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 영화는 명절행사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트랜드가 된지 오래다.

웬만큼 보지 않고는 친구들과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다.

그것도 알랭 들롱의 푸른 눈동자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매캐한 표정이 일품이라든가 하는 것을 넘어 앙겔로 풀로스의 카메라 샷이 죽이더라는 식의 얘기가 아니라면 소위 '말발'이 서지 않는다.

눈빛에 감동하건 카메라 샷을 분석하건 영화는 이렇게 보는 이 마다 즐기는 방식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내게도 나만의 영화보기 방식이 하나 있다.

이름 짓자면 '단역배우 주목하기'쯤 될까. 멋진 주인공이 아니라 이름도 없는 단역에 주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아나는 주인공에게 느닷없이 차를 뺏기는 남자나 그 차에 부딪쳐 부서지는 과일가게의 주인 같은 사람들 말이다.

나는 그게 유별나게 궁금하다.

영화가 끝나도록 차를 돌려주거나 과일가게를 보상해주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분명 주인공이 날강도도 아닐 텐데 말이다.

나중에 영화 끝나면 돌아가서 싹싹 빌고 보상해줄까? 물론 실없는 소리다.

우리의 멋진 주인공을 위해서는 모두 죽어도 싸다.

최근에 '실미도'를 봤다.

거기 훈련병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여선생이 있었다.

물론 그녀는 단역이다.

그러면 차를 뺏긴 남자나 부서진 가게의 주인과 같은가? 그녀가 주인공인 '실미도'였더라면 어떤 영화가 됐을까? 영화는 역사 속 단역들의 비극을 증언하면서 영화 속 이름 없는 단역 한명의 비극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영화는 종종 현실과 다르지 않기에 나는 여전히 실없기 짝이 없는 내 방식의 '단역배우 주목하기'를 현실에서도 습관화하게 된다.

서정호(베이프로모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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