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갠 긴 언덕에 풀빛이 푸른데/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고려시대의 문인 정지상(鄭知常)의 시 '송인(送人)'은 별리의 아픔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비가 그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려 하는데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포구의 언덕에 난 풀은 비에 씻겨 푸르름만 더하고 있다니 '이별시의 압권'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내리는 비가 이왕이면 한 닷새쯤 계속 내려 임의 발걸음을 붙잡았으면 하는 애틋한 사연을 담은 김소월(金素月)의 '왕십리'도 이에 버금가는 이별시로 보인다.
▲이들의 시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순애보'보다는 '망각의 강'을 살아서 건너기 위해 안달하는 것 같은 세태라 삭막하기 그지없다.
사소한 일에도 원수가 돼 돌아서는 숱한 사람들의 얘기가 다반사며, 부부들의 정나미 떨어지는 법정 다툼도 비일비재다.
게다가 여성 쪽이 더 극성이라니 말을 잃을 수밖에….
▲우리나라 20, 30대 남녀 10명 중 6명은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 연령대의 여성 78.5%는 애정이 식으면 바로 이별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 월간지 '허스토리'의 인터넷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같이 여성들이 사랑이 식었을 때 '관계 개선'보다는 '쿨한 이별'을 택하겠다는 가치관을 보여 '여자가 사랑에 목맨다'는 속설은 이제 옛이야기가 돼 버린 느낌이다.
▲더구나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해 '평생'이라고 답한 남성은 33.2%인데 비해 여성은 18.4%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이 식었을 때의 반응 역시 여성 쪽이 더 차갑다.
'사랑이 식으면 휴지기를 갖거나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응답한 남성은 42%지만, 여성은 그런 반응을 보인 경우가 고작 21.5%이기 때문이다.
"떠나는 그대/조금만 더 늦게 떠나 준다면/나 그대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라는 정호승(鄭浩承) 시인의 '이별 노래'가 실감나는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이문열(李文烈)의 소설 '레테의 연가'로 '망각의 강'인 '레테'가 일반에 널리 알려졌지만, 이 강에 대한 플라톤의 풀이가 새삼스러워진다.
그는 이데아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 강을 인용했다.
그에 따르면, 이데아의 세계에 살던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강이 레테이며, 이 강을 건너면 이데아의 세계에서 살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다는 내용이다.
순애보가 무색해지는 이 시대의 '레테의 강'을 두고 오늘의 시인들은 어떤 이별시들로 감동을 자아낼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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