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가 읽어주는 전래동화

옛날에 꿩과 메추라기가 한 골짜기에 이웃해서 살았어. 그런데, 어느 해 겨울에는 두 집 다 그만 먹을 것이 똑 떨어졌네. 밖에는 춥고 바람 불고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도무지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형편이야. 이걸 어쩌나 하고 궁리하다가, 꿩이 먼저 건넛마을 생쥐한테 가서 양식을 꾸어 오기로 했어.

꿩이 건넛마을 생쥐 집 앞까지 가긴 갔는데,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거든. 생쥐는 길짐승이고 저는 날짐승이니 여느 때 서로 이름을 부르며 지낸 적도 없었단 말이야.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으니 하기 좋고 듣기 좋은 말로 불러야겠다 하고서 이렇게 불렀어.

"이 산 저 산 열 산 중에, 이 들 저 들 열 들 중에, 점잖고 인정 많은 생쥐생원 계시오?"

집안에서 생쥐가 들어 보니 밖에서 누가 저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아주 듣기 좋거든. 산 중에 들 중에 점잖고 인정 많은 생쥐생원이라니, 그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리야? 기분이 절로 좋아진단 말이야. 그래서 문을 열고 뛰어나가 꿩을 반갑게 맞아들였어.

"아이고, 이거 꿩생원님이 아니십니까? 이 눈 속에 어쩐 걸음이십니까?"

"예. 다른 일이 아니라, 우리 집에 먹을 것이 똑 떨어져서 양식을 좀 꾸러 왔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염려 마십시오. 얼마든지 꾸어 드릴 터이니 마음대로 가져가십시오".

생쥐가 넉넉하게 인심을 써서 꿩은 양식을 많이 꾸어 왔어.

그걸 보고 이웃집 메추라기가 저도 생쥐한테 양식 꾸러 가겠다고 나섰어. 그런데, 메추라기도 막상 생쥐 집 앞에 가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거든. 저도 여느 때 생쥐하고 서로 이름을 부르며 지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제까짓 게 그래봐야 볼품도 없는 조그마한 길짐승인데 아무렇게나 부르면 어떠랴 하고서 이렇게 불렀어.

"이 집 저 집 열 집 중에, 이 골 저 골 열 골 중에, 고양이밥 찌꺼기 생쥐 안에 있느냐?"

집안에서 생쥐가 들어 보니 밖에서 누가 저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아주 귀에 거슬리거든. 집 중에 골 중에 고양이밥 찌꺼기라니, 세상에 이런 고약한 말이 어디 있느냐 말이야. 고양이한테 쫓기는 제 신세를 얕잡아보고 놀리는 말이 틀림없잖아. 기분이 절로 나빠져서 얼굴만 삐죽이 내밀고 퉁명스럽게 대꾸를 했어.

"게 누구냐? 무슨 일로 왔느냐?"

"우리 집에 먹을 것이 똑 떨어져서 너희 집에 썩어나는 양식 좀 꾸러 왔다".

"흥, 너 줄 것은커녕 나 먹을 것도 없다.

어서 가버려라".

생쥐가 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리니, 메추라기는 하릴없이 빈손으로 털레털레 돌아왔지.

그래서 꿩은 겨울을 잘 났는데, 메추라기는 겨우내 쫄쫄 굶고 살았대. 산지기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아직도 쫄쫄 굶고 있대.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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