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대구교육과학연구원에서는 상당히 긴 이름의 회의가 열렸다.
'사교육비 경감 대책 세부 추진 계획 수립을 위한 협의회'. 교육부가 지난달 내놓은 사교육비 대책의 실현 방안에 대한 의견 수렴 자리였다.
교육부가 3월초까지 전국 시.도 교육청에 이를 보고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대구의 고교나 교육청 관계자들은 사실 EBS를 통한 수능 방송, 방과 후 학교 내 보충수업 등을 골자로 하는 이번 대책에 대해 달라질 것도, 기대할 것도 크지 않다는 반응들이다.
실제로 대구의 대다수 고교는 수년째 EBS 방송 수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보충수업도 마찬가지다.
특기.적성교육이란 명목으로 국.영.수 강의를 한다며 교육단체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방과 후 수업은 이미 정착된 상태다.
한 고교 교장의 얘기. "수준별 보충수업이다, 자율 선택이다 해서 포장은 그럴듯 하지만 공연히 혼란만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고3생의 경우 아침 방송수업,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 야간 자율학습으로 이어지는 체계가 잡혀 있는데 이를 흔들 수 있습니다".
지역 교육계에서는 이번 대책이 교육부의 수도권 중심 정책 경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들고 있다.
서울의 경우 방과 후 보충수업이나 야간 자율학습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시키려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교육비 과다 지출이 문제가 되고, 부모의 경제 능력에 따른 차별이 시비거리가 된다.
그러나 지방을 둘러보면 그런 상황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학교나 고교 1, 2학년의 경우 학원 수강이나 과외를 받기도 하지만 정규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을 학원에 떠넘기는 지경은 아니다.
고3생들은 "학교가 애들 잡는다"고 할 정도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매여 있다.
중소 시.군 단위에서는 '교육 기회 평등 대책'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듯하다.
유명 강사진으로부터 잘 준비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수도권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이들 지역 학생들이 어떻게 위성과 케이블을 통해 교육방송이나 인터넷 강의를 시청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궁색한 답변만 내놓고 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번 대책이 교육부가 1년여 동안 준비해온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그들은 과연 어디서 어떻게 현장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의견을 수렴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 습관대로 지방은 차치하더라도 EBS 시청 방법 문제, 보충수업 담당 교사 외부 영입 문제 등으로 수도권 교육 현장조차 벌써 삐걱거리고 있지 않은가.
안병영 교육 부총리는 이번 발표를 앞두고 방송사와 신문사 등 중앙 언론에 집중적으로 홍보를 벌였다고 한다.
그런 때문인지 중앙 언론들도 이번에는 예의 비아냥식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그들 역시 오랫동안 수도권의 교육 문제에만 천착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방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기사는 극히 드물다.
교육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스스로 '분권 병목화' 현상이란 용어를 내놓으며 그동안 지방, 단위 학교로의 실질적 권한 이양이 미흡했다고 밝혔다.
뒤따른 얘기는 당연히 권한 이양을 촉진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새해 들어 야심차게 내놓은 첫 정책이 수도권 중심 대책에 지방이 끼워맞추라는 식이니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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