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빡빡한 선거법, 체력싸움"...어느 후보의 24시간

"이번 선거는 선거법과의 전쟁 아닙니까".

총선 후보 등록 첫날인 31일 오후 3시쯤 대구 산업정보대(대구 수성구 만촌동) 정문 앞. 학생들에게 자신의 기호와 약력이 적힌 명함을 나눠주는 김모(50.대구 수성갑 선거구) 후보의 손길이 바쁘다.

수행원 2명은 한걸음 뒤에 서 있을 뿐이다.

개정된 선거법에는 운동원이 후보자 본인을 대신해 명함을 돌릴 수 없도록 되어있기 때문.

30여분간의 '얼굴 알리기'를 마치고 이동차량에 오르는 김 후보의 표정이 지쳐 있다.

이날 새벽부터 등산로, 출근길 버스정류장, 선거사무소, 길거리를 돌았다.

정치 신인인 김씨가 현행 선거법상 얼굴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명함 돌리기와 악수뿐이다.

이때문에 한명이라도 더 만나야 해 새벽 1시나 되어야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면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는 이런 식으로 3천여장의 명함을 돌렸다.

"후보를 알릴 수 있는 길이 본인 밖에 없으니 체력이 관건입니다". 그는 며칠 전부터 보약을 먹고 있다.

차에는 건강 드링크가 실려있고 주변의 코치대로 일명 '효도신발'도 신어보고 발 맛사지, 반신욕도 하고 있다.

'운동장 연설회'가 없어져 선거 분위기가 시들하지 않느냐고 묻자 "선거법이 준엄하게 바뀐 것은 환영할 일"이라며 "예전 같으면 나 역시 탈법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까다로운 선거법은 역시 큰 부담.

후보자 이외 자원봉사자나 선거 사무원은 어깨띠를 두를 수가 없고, 유세 행렬도 후보자를 포함해 5명으로 제한됐다.

유례없이 강도높은 선거 단속을 피하려면 영수증 하나하나까지 챙겨야 한다.

그는 매일 이동하는 차 안에서 짬짬이 수행원으로부터 선거법 주의사항을 경청해야 한다.

이날 김 후보는 1시간동안 만촌 네거리 주변을 돌며 200여장의 명함을 돌렸다.

그만한 횟수의 악수를 한 셈. 명함이 떨어지면 수행원이 양복 주머니에서 꺼내 준다.

다른 후보와 마찬가지로 그는 까다로운 법망을 피해가는 '유세 아이디어 회의'를 매일 갖는다.

김 후보는 유니폼 금지 조항 때문에 소속당을 알리는 색깔의 '점퍼'를 입고 수행원에게 같은 색의 모자와 가방을 들려 '세트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이날 오후 6시로 예정된 선거사무소 개소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김 후보가 농담반으로 말을 건넨다.

"고사는 지내야 할 텐데…. 그런데 돼지머리에 돈 꽂는 것도 정치자금법 위반인가?"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