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작가 톨킨의 소설을 영화화한 '반지의 제왕' 못지 않은 팬터지와 스펙터클 넘치는 소재가 있다면 1순위 후보는 무협소설일 것이다.
기암괴석 산봉우리와 하늘이 보이지 않는 심산유곡, 사막과 변경 등 무협의 배경은 '반지의 제왕' 중간계에 못지 않으며 등장인물들의 신기막측한 무공도 마법의 팬터지를 능가한다.
중국계 이안 감독이 '와호장룡'이란 영화를 통해 그 가능성을 일단 보여줬지만, 무협소설 대작과 할리우드의 자본.영상기술이 본격적으로 접목된 블록버스터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혹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혹자는 무협소설을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일컫는다.
무협소설에 나오는 '협객'만큼 대리만족을 주는 캐릭터도 드물다.
과장되고 황당한 소재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무협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등장인물 모두가 현대인들의 감정과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협소설을 좋아하거나 향수를 지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 나왔다.
'강호를 건너 무협의 숲을 거닐다'는 무협소설 평론가인 량셔우쭝(梁守中)이 지은 무협소설 평전으로 2천년에 걸친 무협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놨다.
무협소설은 명.청 시대를 거쳐 1930년대~1950년대 중국 본토에서 남.북파 무협소설로 번영기를 구가하다가 자취를 감춘 뒤 1950년대 중반 홍콩에서 김용과 양우생이라는 걸출한 작가들이 나오면서 중흥기를 맞는다.
김용과 양우생은 구상과 수법이 새롭고 변화무쌍한 줄거리와 뛰어난 언어 구사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둘의 작품은 고전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세상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묻어나온다.
'소오강호'(김용 작)에서 고수 풍청양은 주인공 영호충에게 절정검술 '독고구검'을 전수하면서 "무초(無招)가 유초(有招)를 이긴다"는 명언을 남긴다.
검술 초식을 배합하고 그것을 하나로 꿰어 거침없이 연결할 수 있는지 생각한 다음 단 한 초식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바둑의 고수가 모든 정석을 고심참담하게 익힌 뒤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처럼….
김용의 무초론은 대만 작가 고룡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초식은 무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모와 계략 속에 있다"는 풍자로 가일층강조된다.
김용은 그의 마지막 작품 '녹정기'에서는 최강의 무공이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결론을 끌어낸다.
#무협소재 맛깔나게 분석.비교
저자는 무(武)는 일종의 수단이고 협(俠)이 목적이 돼야만 제대로 된 무협소설이라는 지론을 편다.
무는 있으나 협이 없는 소설은 살인광과 색골의 전형이 되며, 이런 식의 무협소설은 선정적이고 폭력적이어서 마치 소금물로 갈증을 달래는 것처럼 저질 평가를 면치 못한다.
무협의 붐을 타고 너무나도 많은 무협소설이 이같은 공식에 따라 양산돼 저질 시비를 나았다.
책은 무협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소재와 원천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무공초식이 만들어지고 이름지어지는 과정, 각종 무기, 문파 등을 해박한 지식으로 비교.분석해 놓았다.
저자는 무협소설이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중국문화의 전통을 담고 있는 문화코드라는 일관된 주장을 편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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