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에세이-부모님,그리고 고향

어릴 적 어느 날 고향 집 근처 논둑에 앉아 도랑물 속을 바라보았을 때, 좀 이상한 벌레가 한 마리가 있었다.

불룩할 정도로 등에 알을 가득 지고 있던 벌레는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이미 힘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그것이 무엇인지 신기한 듯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 벌레의 등에 붙은 알속의 새끼들은 어미 몸을 다 빨아먹으며 자라나 독립한단다.

그 때 어미는 껍질만 남고 죽는다". 그 이후로도 나는 집 근처의 도랑에서 몇 번 그 벌레를 보았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왠지 그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상주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 뒤 대구로 나와 자취와 하숙 등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의 학창시절을 넘겼다.

그만큼 객지에서 고향과 부모님 생각을 할 기회가 많았다.

지금은 '고향 떠나기', '고향 안 돌아보기' 전문가가 다 되고 말았지만, 어릴 적에 나는 정말이지 고향을 떠나면 큰일 날 줄 알았다.

지금 나의 생가는 내가 보관한, 빛바랜 대문 앞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찍은 흑백사진 속에서 빛난다.

고인이 된 분들의 청춘도 거기선 당당히 버티고 서 있다.

폐가가 된 지 꽤 오래지만, 그래도 난 고향에 가면 나의 생가를 찾곤 한다.

내 생애의 초고(草稿)이고, 내 추억의 나이테가 출발한 곳. 내 인생의 모든 첫 만남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내 생애의 초심도, 어머니-모성, 아버지-부성, 그리고 형제들의 정감이 고향엔 살아 숨쉰다.

아무런 조건 없이 유년(幼年)의 얼굴만으로도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고향에는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집과 마을, 인간관계, 자연 환경, 시간과 공간이 있다.

현재의 집에서 10여분 걸으면 닿는 나의 생가. 구멍이 뚫린 창문과 깨진 기와 틈으로 쑥부쟁이만이 자라고 토담을 타고 넘나드는 가느다란 꽃줄기들만이 나를 반긴다.

그 마루 밑에는 유년시절 내가 그렇게 아끼며 숨겨 두었던 장난감과 굴렁쇠 바퀴, 동화책들이 묻혀 있다.

그것들은 오랫동안 부드러운 흙이 되어가면서도 나와의 만남을 기다려왔겠지만, 난 객지에 너무 오래 떠나 있었다.

쓰러진 대문 옆에는 고인이 된 아버지가 예전에 손수 머리부분을 잘라버려 옆으로 몸이 떡 벌어진 플라타너스가 여태껏 늙지 않고 자란다.

자주 호통만 치시던 아버지는 아직도 그렇게 고향에 버티고 서 계신다.

대학 4학년 겨울쯤이었던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으니 돈을 좀 마련해달라고 하자 논에서 일을 하시다 말고, 나의 고생과 돈이 걱정되셨는지, 한참을 멍하게 하늘만 쳐다보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그 말없음으로 나의 철없음을 외면하시며, 내 기억 속에서 평생 나를 꾸짖고 가르치신다.

지금 고향에는 늙은 어머니가 텃밭을 가꾸고, 개 두어 마리를 기르며 정붙이고 홀로 계신다.

전화만 드리면 '요즘도 바쁘지?'라고 미리 되묻는 어머니. 내가 인사말도 하기 전에 자식의 입장을 항상 먼저 배려하시는 동안 나는 고향과 어머니에 대해 무심(無心)만을 찬란히 키워왔다.

배울수록 불효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어쩌다 찾아뵙는 어머니는 허리가 굽고 작아지며 점점 늙어만 간다.

그것을 먼발치서 지켜보는 나의 심정은 참으로 눈물겹다.

지난 3월에 쓴 시 '봄날은 갔다'에는 내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어머니는 허리가 더 굽으셨다 땅바닥이 더 잘 보인다면 이 봄에 돋은 나물이 남아있기나 할까 쓴 냉이를 씹으며 그래도 고향에 잘 왔다고, 깨끗해진 제방 아래 물 한 방울 없어도 하천이 아름답다고, 고향에 가면 하룻밤을 못 자고 추풍령을 넘어 갈 나를 흐린 눈썹 밑에 넣어 오래 쳐다보고 싶어하는 어머니, 자식들 다 떠나고 나면 새 씨앗 기다리는 저 전답의 빈터를 늙은 지아비 삼아 사실까, 마지막 인사처럼 휘날리는 춘풍(春風), 애써 땅에다 묻고 나는 또 돌아선다'.

그렇다.

어릴 적 내가 도랑에서 보았던 그 벌레는 바로 고향의 어머니였다.

어미의 살과 피를 빨아먹고는 물 속에 헤엄쳐 가는 새끼들의 뒤에서 딱딱한 껍질이 되어 스스로 주검이 되어 조용히 가라앉는 것. 그런 삶의 진실을 어머니는 태연히 나에게 미리 가르쳐 주셨다.

깨우침은 늘 뒷북치듯이 오는 것. 어버이날에 부모님과 고향 생각을 하면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최재목(시인.영남대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