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도 못누린/호사스런 장례일랑/아예 마련치 말라/까마귀떼 우짖어/날아가는 어느 아침에/내 시체를 메어다/행길마루에 버리고/오가는 길손들이/서낭당처럼/조약돌 한개씩만/팔매케 하라'(시 '유언'중에서).
이 시는 알려진 것처럼 임종시의 그 유언장이 아니라 구상 시인이 평소 생각해온 사생관의 일단을 표현한 것일뿐이다.
죽음을 종말이 아닌 회귀로 생각해온 구상 시인은 그 어디에서도 인간이 사멸한 후 어떻게 변용하는가에 대하여 말한 적이 없다.
'오늘'을 '영원' 속의 한 과정으로 알고 있던 시인은 사후 영육간의 완성에 대하여서는 그저 신비에 붙여두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시인이 이 시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죽음의 실체가 아니라 생의 한 변화일 뿐이라는 그 독특한 사생관이었다.
병실에서 본 시인의 모습은 애처롭기보다 마치 순정의 소녀가 울타리너머의 꽃을 보고 생을 확인하며 머지않아 자신이 돌아갈 저 무한의 공간을 응시하는 그런 것이었다.
스페인의 성자 그리스토폴이나 싣달타가 강을 자기 완성을 위한 회심의 수도장으로 삼았듯 시인 구상도 생애를 두고 강과 인연을 맺어왔다.
원산 마식령 계곡의 적전강이나 여의도를 흐르는 한강, 그리고 왜관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은 시인의 시심(詩心)을 적셔주는 토양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강이 유한이 아니라 주야없이 흐르되 흐른다는 모습으로 변함없는 것으로 보았고, 그래서 영원 속에서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은 늘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어쩠거나 시인의 죽음으로 텅빈 공간에 내던져진듯한 공허감과 함께 한 시대의 종언을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구라는 향토에서 문학 반세기를 보냈을뿐 아니라 저 50년대 허무의 지평위에서 전선문학을 완성시킨 장본인이 시인 구상이다.
북성로에서, 또 때로는 향촌동에서 사람이 정을 잃으면 얼마나 허무해지는가를 보여준 그 주인공이 한 시대를 접고 표표히 사라졌다함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작고한 후 영안실에서 본 영정의 모습은 생시의 그 온화함을 잃지 않은채 머리를 숙인 우리에게 '고맙고 고마워'하는 것만 같아 끝까지 영정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93년 부인이 작고한 후 세운 비석에 시인의 사망일자를 빈칸으로 남겨두었다는 사연을 적은 시 '유명의 데이트'가 무엇때문인지 자꾸만 떠올라 어쩔수가 없었다.
선생의 명복을 빌어마지 않는다.
윤장근(죽순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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