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 결정도 끝이 났다. 침묵도 끝이 났다. 청구권과 피청구권도 모두 돌아가고 돌아오고. 제자리가 메워지면서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그렇지만 일상에는 구석들이 많은 법. 한 구석 켕기는 구석. 그 구석에 구멍이 뻥 뚫린 듯하다는 이야기들. 뚫린 구멍으로 보이는 머뭇거림. 그리고 뒤돌아 봄. 자궤에 가까운 질문들. 머뭇거린다는 것과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아쉽다는 말과 무관하지 않다. 무엇이 아쉬워서 머뭇거리고 뒤를 돌아본다는 것일까. 이 푸른 신록의 계절에 말이다.
불운이란 인생에 있어서 늘 있게 마련이다. 운이 없는걸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미련일 뿐이다. 미련한 놈의 그 미련. 그래서 아무리 옳은 일을 했어도 마땅한 결과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일컬어 미래학에서는 불운클럽(The'Right, But'Club)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열심히 운동을 했지만 도리어 그 때문에 심장병에 걸리거나 입시에서 자녀들과 씨름하며 밤새워 준비했지만 수능점수가 엉망일 경우에 해당된다. 물론 탄핵 같은 일도 그렇다.
그렇지만 불운하다고 해서 인생을 내버려 둘 수야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 인생의 삶을 음미하면서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살피는 것이 까다롭고 때로는 귀찮다고는 하지만 순리다. 이것은 삶을 결코 음미하지 않는 동물과의 차이. 그래서 인생은 더욱 값진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잠든 황소로, 자신은 그 황소의 잠을 깨우는 한 마리의 쇠파리로 비유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음미하지 않는 삶. 그것은 단연 하늘에 닿지 않을 인생의 무의미 일 것이다.
이럴 때 읽을 한 권의 시집. 천상병의 '귀천(歸天)'. 이 시집에는 너무 잘 알려진 시 '귀천'이 있다. 인용해 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시 외 에도 책에는 우리 겨레의 심성에 딱 어울리는 주옥같은 시편 80여 편이 들어있다. 주로 지난 70-80대에 지은 작품들. 새, 주막에서, 천상시인, 요놈요놈 요 이쁜 놈 등 편의상 네 구역으로 나눠 작품연대순으로 배열해 뒀다.
하필 왜 천상병일까. 너무 욕심 없고 순수하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가 살았던 시절, 그렇게 멀지도 않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렇지만, 그도 힘겹게 세상을 살았다. 아슬아슬한 숱한 애환들. 오죽했으면 뻔히 살아 있을 때 유고집이 나왔을까. 행방불명 탓이었다.
지금 지리산 중산리에는 산더미 같은 돌에 시 '귀천'을 새겨 시비를 만들어 두었다. 세상에 소풍 왔다 간 시인의 자유가 얼마나 돌 더미에 남아 있을까마는 그래도 힘든 요즘 세상살이에서 아프면 한 번 읽어보며 날갯짓 펴 보라는 의미는 크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고 했던가. 마찬가지다. 하늘로 돌아가는 날. 누구나 세상은 소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하늘로 돌아가는 것은 하늘에서 왔다는 말이라고 풀이 했다.
하늘에서 왔건 하늘로 가건 어느 것이든 그것은 한 점 부끄럼 없어야 가능한 일이다. 부끄럼 없는 인생.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루소도 외쳤다 '잘못을 부끄러워하라'.
그러나 그 잘못을 고치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잘못을 고칠 일만 남은 셈이다. 누가? 너인가 나인가 아니면 그인가. 영국속담에도 고백한 죄의 반은 용서받은 것이라고 했다.
나머지 절반을 위해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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