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법 대선자금' 수사 뒷얘기

정치권은 물론 재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온 대

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는 작년 8월말 'SK비자금' 사건으로 촉발된 이후 장장 9

개월간 도도하게 진행되면서 많은 뒷얘기를 남겼다.

국민적 성원을 등에 업고 '성역'으로 여겨져 왔던 대선자금의 비리를 파헤친 이

번 수사는 그 범위와 대상이 광범위한 만큼 검찰사상 유례가 드물 정도의 매머드급

수사팀이 짜여졌다.

검찰은 작년 11월초 대선자금 전면 수사를 선포한 직후 서울지검에서 SK사건 수

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재계의 저승사자'로 명성을 떨친 이인규 원주지청장을 불러들

이는 등 전국에 내로라 하는 검사 20명과 수사관 80명 등 최대 100여명으로 수사팀

을 구성, 정.재계의 유착 비리를 파헤쳐 나갔다.

수사팀이 상주한 대검청사 10층과 11층의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은 날들이 이어

졌고, 숙식을 조사실내에서 해결하는 바람에 수사팀이 옥살이 아닌 옥살이를 해야했

다.

그 때문인 지 수사팀의 중추인 남기춘 중수1과장의 몸무게가 한때 평소보다 10

㎏ 가까이 불어났던 일화는 유명하다.

출퇴근때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바람에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모자를 쓰고 외출해야 했던 안대희 중수부장은 수사팀에 "(수사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감기도 걸려서는 안된다"며 닥달했지만 수사 막바지에는 본인이 심한 독

감과 스트레스성 어깨통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중량급 여야 정치인들을 줄줄이 영어의 신세로 만들며 파죽지세로 치달았던 대

선자금 수사가 늘 순조롭게 진행됐던 것만은 아니다.

수사 대상에 오른 대기업들은 검찰의 거듭된 자수.자복 요구에도 불구, 정치권

의 눈치를 보느라 비협조적으로 나오기가 일쑤였고 일부 대기업 총수들은 이러저러

한 명분을 내세워 일찌감치 출국해버려 소환 조사를 어렵게 만들었다.

수사기간 내내 계속된 형평성 시비 등 정치권의 집요한 '공격'이나 지난달에 치

러진 17대 총선,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등도 수사를 장기화하는데 한몫을

했다고 검찰은 털어놓고 있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수사중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아무래도 대통령

께서 불법자금 수수와 무관치 않다는 정황이 나왔던 것"이라고 꼽은 뒤 "LG측으로부

터 한나라당에 '차떼기'로 150억원을 제공한 자백을 받아내기까지 일주일동안 팽팽

한 줄다리기를 했을 때에도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정치자금의 수수가 워낙 은밀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한나라당측 핵심 인물인 서

정우 변호사가 만약 긴급체포 전에 해외로 출국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수사 과정에서 보안을 유지하려는 검찰과 어떻게든 수사기밀을 취재해 보도하려

는 언론은 서로 숨바꼭질의 연속.

수시로 새나가는 수사보안을 지키기 위해 검찰이 출입기자들의 휴대전화 사용내

역을 조회하다 들통탄 사건은 결과적으로 검찰명예의 실추를 초래한 자충수가 됐다.

대선자금 수사는 금전적으로 가장 깨끗한 총선이라는 주요 성과물 뿐만 아니라

영구미제 사건이 될뻔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행방을 캐내는 부산물을 낳기

도 했다.

기업들이 정치권에 제공한 채권을 쫓기 위해 명동의 사채시장을 이 잡듯이 샅샅

이 뒤지고 수많은 계좌를 쫓다가 출처불명의 괴자금을 포착한 것이 전씨 비자금 수

사 재개의 도화선이 됐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명동에서 '큰 손' 노릇을 하는 사채업자는 검찰의 조사

대상이 됐고, 그로 인해 사채시장이 한동안 '꽁꽁' 얼어붙었다.

검찰이 사채시장과 대기업에 대한 저인망 수사과정에서 뇌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채권이나 수표가 상당수 포착됐고 각종 비리첩보도 수북이 쌓였다는

것은 수사팀 안팎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수사는 일단락됐지만 '적절한 시점'에 대대적인

공직사정 등이 개시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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