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레이건

미국 사우스다코다 주 러시모어산 중턱에는 미국민들로부터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워싱턴, 링컨, 제퍼슨, 루즈벨트 등 4명의 거대한 얼굴 조각상이 있다.

한 부자가 1927년부터 1941년까지 2대에 걸쳐 완성한 4명의 대통령상은 얼굴 길이가 18m로 수십㎞ 떨어진 곳에서도 보일 정도로 커 큰바위얼굴로 불린다.

한때 이 큰바위얼굴군에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동참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영면한 레이건은 그만큼 생시에도 큰바위얼굴이었다.

▲구두 외판원의 아들로 태어난 레이건은 지방방송 아나운서를 거쳐 1937년 할리우드로 진출, 1964년까지 59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대부분 주연보다는 조연, A급보다는 B급 영화에 출연한 보통 배우였다.

그러나 1981년 69세의 고령에 제40대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재임 8년 동안 미국을 지구상의 유일한 초강대국에 올려놓았다.

서슴없이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탄하며 냉전체제를 승리로 이끌어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국내적으로는 대규모 감세정책인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로 경제회복의 기반을 닦았다.

당시 미국은 월남전 패퇴 이후의 좌절감과 경기 침체의 그늘속에서 일본의 경제, 소련의 무력 팽창 기세에 눌려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레이건은 그런 미국을 완전히 역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재임시 '아둔하다', 말하자면 '무식하다'는 조롱을 받았다.

다섯번이나 하원의장을 지낸 토마스 오닐은 "레이건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식견이 모자란 인물"이라고 비난할 정도였다.

▲레이건은 뛰어난 유머감각과 낙천적인 성격, 단순하고 직설적인 화법의 소유자였다.

"이웃이 실업자가 되면 경기 후퇴다.

당신이 실업자가 되면 불황이다"는 식이었다.

때문에 그를 가볍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던 반면 대다수의 미국민들은 그의 단순명쾌한 연설과 여유로운 미소에서 서부 개척시대의 기상과 존 웨인의 풍모에서 느끼는 미국인의 진정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후 그의 비판자들도 그의 업적 앞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아직 큰바위얼굴로 올려지진 않았지만 워싱턴 국립공항이 로널드 레이건공항으로 개명되고 우표에서 항공모함까지 50여곳에 그의 이름이 붙여져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암울하고 분열된 국민들 앞에서 말했다.

"우리는 앞서 가야한다.

그러나 뒤쳐진 사람을 두고 가서는 안된다". 국민을 아우르는 레이건의 통합과 희망의 메시지가 신바람을 일으켜 초일류국가를 만든 것이다.

정치적 말장난과 비생산적 논란을 야기하며 통합 보다 분열, 희망보다 절망을 던져주는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배워야 한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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