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

청(淸)의 네번째 황제인 건륭제 재임시절(1735~1795)은 태평성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한복판인 1768년 중국 대륙은 정체 모를 공포와 광기에 휘말린다.

시작은 양쯔강 하류 더칭(德淸)현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비롯된 '괴소문'이었다.

석공들이 다리 공사를 하면서 누군가의 이름을 적은 종이조각을 넣고서 다리를 놓으면 이름 적힌 사람은 영혼을 빼앗긴다는 것이었다.

#괴담정국 정략적 이용 건륭제의 행보

소문은 삽시간에 주변 마을로 확대됐다.

요술사들이 사람들의 '변발'(앞머리를 밀고 뒷머리를 길게 땋는 청나라 시대의 머리 양식)을 잘라 영혼을 훔치고 있으며, 당한 사람은 목숨을 잃는 것으로 내용도 변질됐다.

백성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집단 광기가 빚어졌다.

낯선 사람들을 요술사로 의심해 신고하고 이방인에게 집단 폭력을 행사했으며 평소 앙심을 품은 사람을 모함하는 중국판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은 주로 승려.도사.거지들이었다.

이들은 모진 고문에 못이겨 거짓 자백을 했고 괴소문은 수도 베이징으로 번졌다.

건륭제는 괴소문 중 '변발'과 관련된 점을 주목했다.

변발은 만주족의 지배에 대한 한족의 복종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영혼을 훔치는 사건을 건륭제는 모반이라고 규정짓고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로써 소문은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했다.

범인은 없었지만 괴소문의 정체는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냈다.

단초는 자상사와 관음전이라는 두 절이 벌인 알력 싸움이었다.

가난한 절인 자상사의 승려들이 부유한 관음전을 질투해, 관음전 근처에 가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마침 관음전 근처에는 다리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방대한 자료.상상력…사건전말 캐내

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필립 쿤 교수가 지은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은 1768년 중국을 뒤흔든 공포와 광기를 다뤘다.

방대한 사료와 상상력으로, 사건의 전말과 건륭제의 정치적 행보를 풀어낸다.

건륭제는 괴소문을 관료 체제 재정비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건륭제는 만주족 관료들이 한족 문화에 물들어 사치와 나태에 젖어 있다고 개탄하던 참이었다.

건륭제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그처럼 커진 것은 초동수사에 실패한 무능한 관료들 탓이라며 해당 관리들을 엄벌했다.

저자는 당시 건륭제가 버마 원정 실패에 따른 정치적 타격을 만회하고 관료에 대한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괴소문을 이용하려 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청조는 표면적으로 태평성대였지만 인구 증가와 토지 부족으로 대다수 백성들은 극심한 생존경쟁에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경제난은 많은 유민들을 양산했는데, 영혼을 훔치는 요술사를 체포하라는 칙령이 내려지자 백성들은 이방인을 의심하고 때리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갑갑한 삶의 배출구를 찾았다.

건륭제 치하의 청나라는 적어도 백성들의 마음 속에서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건륭제 사후 반 세기만에 청나라는 아편전쟁(1840)이라는 수난을 겪으며 서구 열강에 농락된다.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전제 권력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책은 일깨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선량한 사람들을 반국가적인 위험인물로 낙인찍으며 공포와 의심을 조장한 지난 날의 한국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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