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6월 섬진강 기행

'청매실'따기가 한창이다.

지난 봄 연분홍 매화로 물들었던 전남 광양. 이제 색이 바뀌었다.

줄기마다 주렁주렁 청매실이 탐스럽게 여물어 6월의 싱그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똑~ 똑~ 청매실을 따는 아낙네들의 얼굴엔 수확의 기쁨이 그대로 묻어난다.

콧노래를 부르며 바쁘게 손을 놀리는 여인들 틈에서 청매실농원 주인 홍쌍리((洪雙理.62)씨가 눈에 들어온다.

농원 대표인데도 여느 일꾼과 다름없이 손수 매실을 따내고 있다.

매실박사로 통하는 홍씨는 이미 매스컴에 많이 오르내린 성공신화의 주인공.

1965년 밀양에서 이곳으로 시집 온 홍씨는 시아버지와 함께 척박한 돌산인 백운산 자락에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자궁수술에다 류머티스 관절염 등 갖은 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매실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건 매실의 가능성 때문. 매실을 그저 '배 아플 때 먹는 약' 정도로 여겼던 그는 한의사의 권유로 직접 농사지은 매실을 먹었다.

놀랍게도 3개월만에 굳어있던 팔꿈치가 살며시 펴지는 몸의 변화를 체험했다.

그때부터 매실에 대한 확신을 갖고 가꾸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10여만평 규모의 매실농원으로 탈바꿈했다.

"버릴게 하나 없는 것이 매실"이라는 홍씨의 매실 예찬론이 귀에 박힌다.

새콤한 맛을 내는 매실은 오래 전부터 한방에서 약으로 이용해왔다.

그러다 세인들의 주목을 끈 것은 몇해전 인기리에 방영된 TV드라마 '허준' 때문이다.

약알카리성식품인 매실은 구연산과 무기질 등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어 피를 맑게하고, 장의 연동작용을 촉진해 장을 건강하게 해주는 효능을 지녔다.

피로를 풀어주고 노화방지에도 효능이 있어 그야말로 웰빙시대에 딱 어울리는 건강식품인 셈이다.

섬진(蟾津).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강이다.

많은 이들이 봄이면 어김없이 매화와 벚꽃이 지천인 섬진강을 따라나선다.

하지만 섬진강은 사계절 언제 찾아도 갖가지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하동포구를 시작으로 펼쳐지는 하동포구 80리. 그 곳에는 향기와 색, 맛이 충만하다.

이미 끝난 것 같았던 꽃잔치가 배꽃으로 이어지고 녹음을 더하는 수목들이 드라이브의 즐거움을 더한다.

푸른 차 향기와 재첩국 내음이 코 끝을 스치고, 푸르스름한 매실이 눈 앞에 알알이 아롱댄다.

황금빛 보리도 뒤질세라 들녘을 수놓는다.

6월의 섬진강은 자연이 절로 만들어낸 한폭의 수채화다.

* 백운산.섬진강 한폭 수채화

팔십리 섬진강 여행은 하동포구와 인접한 전남 광양 매실마을에서 시작된다. 섬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청매실농원에 가면 무르익은 매실들이 눈을 찌른다. 끝없이 줄지어 놓인 장독도 매실과 함께 농원의 좋은 볼거리. 매실을 담그기 위해 하나둘 들여놓은 것이 어느새 2천200개가 넘어섰다.

산책로를 따라 매화나무를 둘러보다보면 임권택의 영화 '취화선' 촬영무대가 되었던 대나무숲도 만날 수 있다. 매실농원 한편에 지어진 오두막집은 주변 풍광을 감상하는데 더없는 포인트. 이곳에 올라서면 푸른빛의 매화나무가 뒤덮인 산의 모습과 굽이굽이 친 섬진강 물줄기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농원 안에는 매실장아찌.매실고추장.매실된장.매실화장품 등 다양한 매실제품을 파는 상점도 둘러볼 만한 코스다.

*매화.벚꽃 이어 배꽃 잔치

매실농원을 나와 19번 국도를 따라가다보면 도로 양옆으로 하얀 배꽃의 행렬이 계속 펼쳐진다. 녹음 울창한 수목들과 어우러져 눈이 즐겁다. 악양 평사리 최참판댁에 이르기 전 평사리공원도 길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어 잠깐 휴식을 취하기엔 제격이다. 각양각색의 표정들로 솟아있는 수십여기의 장승들도 볼 만하다. 눈 앞에는 하얀 백사장이 펼쳐진 섬진강이 보인다.

평사리에서 우회전해 1003번 지방도를 달리면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였던 최참판댁에 이르게 된다. 오른편으로 펼쳐진 황금빛 보리밭에 절로 취한다. 3천평의 부지에 18억원을 들여 세운 최참판댁은 안채와 사랑채.별당채.행랑채는 물론 초당과 사당까지 모두 14동의 한옥이 들어서 있어 소설 속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곳은 특히 올 가을 방영될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으로 쓰일 예정이라 일반인들의 발길이 더욱 잦을 것으로 보인다. 최참판댁 아래엔 드라마 세트장인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소설 '토지'무대 평사리도

다시 19번 국도. 화개장터를 지나 1023번 지방도를 달리면 도로 양편에 화개천을 따라 야생 차밭이 10여㎞ 펼쳐진다. 보성차밭처럼 대규모는 아니지만 군데군데 푸른 차나무들이 올망졸망하다. '차나무시배지'도 가볼 수 있다.

신라 흥덕왕 때 대렴이 당나라에서 녹차씨를 가져와 처음 심은 곳. 우리나라 녹차재배의 시초가 된 곳이다. 야생차밭 뒤로 10여분만 가면 쌍계사(雙溪寺)가 나온다. 고려 초기에 혜명(慧明)이 창건했다는 쌍계사는 매년 봄 벚꽃명소로 너무나 유명한 사찰이다. 보물 제408호인 쌍계사 대웅전을 눈에 고스란히 담아 귀갓길에 오른다.

▷맛집:섬진강 여행에서 제첩 한 입 맛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광양 청매실농원으로 가기 전 하동읍에 자리한 여여식당(055-884-0080)은 섬진강 제첩만을 사용하는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파를 숭숭 썰어 넣어 하얀 국물을 우려낸 제첩국은 피로를 풀어주고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효과가 있어 해장국으로 유명하다.

또 제첩만을 건져내 초고추장과 갖가지 야채로 버무린 제첩회는 새콤달콤 씹히는 맛이 일품. 제첩회는 2만~3만원, 제첩국이 딸려나오는 제첩백반은 1인분에 5천원이다.

▷가는길:구마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 하동IC→하동19번국도→섬진교 건너 좌회전→861번 지방도→매화마을→청매실농원

글.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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