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스코 1천여명 '장보기' 나선 사연 아세요?

"500원만 깎아 주세요. 아니면 얼갈이 두포기 더 넣어 주세요".

"젊은 아지매가 와 이래 깍쟁이고? 하이고 무섭데이. 자, 한포기 더 묵고 떨어지거라, 마".

할인점과 백화점에 손님을 빼앗겨 파리만 날리던 포항 죽도시장에 25일 모처럼 활기가 감돌았다. '포항 명물 죽도시장을 살리자'며 상가번영회와 자매결연을 맺었던 포스코건설이 이날 임직원 및 가족 등 1천여명을 내보내 대대적인 장보기 운동에 나선 때문이다.

총무팀 민병하 차장의 부인 공말분(45.포항시 지곡동)씨는 "얼갈이, 열무, 말린 가자미 등 먹거리와 잡화를 장바구니가 넘칠 정도로 샀으나 비용은 할인점의 70% 정도였다"며 "상인들과 흥정도 하는 재미도 좋았다"고 말했다.

오랜 만에 시장에 나왔다는 한 임원의 부인 이채령(53)씨는 "이날 아침 따왔다는 완두콩이며 호박잎, 구룡포 앞바다에서 갓 건져온 고둥 등 할인점에서 구경하기 힘든 싱싱한 먹거리를 싸게 샀다"며 "시골 친정집을 다녀가는 느낌"이라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 한 지 석 달된 새내기 주부 류경선(26.냉연팀)씨는 덤으로 받은 감자를 자랑스러운 듯 내보였다.

노무후생팀 황후석(42) 팀장은 "고향집 누님같은 아주머니의 걸죽한 농담과 살아 펄떡거리는 횟감 생선, 핏대를 세워가며 손님을 부르는 모습 등 시장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에서 삶의 활기를 되찾았다"며 "매주 토요일 오후 아내와 죽도시장 나들이를 약속했다"고 했다.

이날 죽도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꼽는 장보기의 가장 큰 장점은 충동구매가 없어 '헛 돈' 지출이 거의 없다는 것. 이들은 "할인점이나 백화점에서는 진열대에 전시된 모양만 보고 물건을 샀다가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버리는 것들이 부지기수"라며 "시장에선 꼭 필요한 것만 사게 돼 좋다"고 입을 모았다.

포스코건설은 매월 한차례씩 죽도시장 장보기 행사를 펼치고 이 행사를 협력업체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친절교육, 가격 및 원산지 표시 표찰 제작 등 상인들이 지도를 요청해온 사항들을 수렴해 행사의 내실을 다지기로 했다.

행사 참가자들은 핵가족 시대라는 점을 감안해 할인점처럼 포장단위를 줄이고 저울에 달아 판매하는 등 고객중심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차도 해결해야 할 문제. 죽도시장은 이날 구매고객에 한해 인근 주차장과 협의해 무료주차 쿠폰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죽도시장 상가번영회 백남도 회장은 "이번 행사는 일반 시민들, 특히 젊은 소비자들에게 재래시장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공무원들도 책상머리에서 '재래시장 활성화'를 논할 것이 아니라 포스코건설처럼 직접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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